김금희(2025). 첫여름, 완주. 무제
소설 마지막 페이지에 "온전히 완주하시고 더욱 행복하시길"이란 문구가 있다. 처음에 무슨 말인가 했다. 앞으로 한 장을 넘기면 출판사 무제 박정민 대표가 남긴 "시각 장애인 분들을 첫 독자로 모시고자 '듣는 소설......" 어쩌고 저쩌고 적혀 있다. 부랴부랴 찾아보니 박정민은 배우였으며, 그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 무제라는 곳에서 '듣는 소설' 즉 오디오북으로 먼저 만들었고, 이를 책으로 나중에 냈다고. 그 책이 이 책《첫 여름, 완주》였다.
작가가《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쓴 김금희라서 바로 책을 잡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은 책. 문장 하나하나가 아주 세밀하고 섬세해서 어찌 작가들이 이럴 수 있지 감탄했던 책이었다. 여기에 내용이 따듯해서 그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 건 이유가 있었다. 출판사 사장이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를 생각하다 이 땅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듣는 소설'을 시작했다는, 여기에 그는 소리소리마소리라는 한국장애인재단과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시작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에 낭독 봉사자로 참여했던 것도 계기라고 했으니.
국내 시각장애인이 25만 2천여 명 되는데 그중 점자 도서를 이해하는 사람은 전체 5%도 안되지만 오디오북 이용률은 80% 된다고. 제작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대체 도서는 도서 출판수 대비 7.6%라는 수치는 미국은 36%, 영국은 34%, 일본은 30%와 비교되는데, 지금까지 성장과 수익만을 추구해 온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부끄러울 것이 뭐 남아있을까 하던 차에, 정말 놀랍게도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표지를 넘기면 작가가 남긴 "얼마나 많은 웃음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을까"라는 문장이 이 책에 딱 들어맞았다.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파안대소도 아니고 실실 쪼개 웃는 것은 더더욱 아닌 웃음. 이걸 흐뭇한 웃음이라기 하기엔 부족한, 웃기긴 웃긴데 서글프면서 아름다운. 웃음에 대한 이런 표현 외에 달리 어떤 표현이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듣는 소설이라서 이를 어떻게든 표현한, 아니 이걸 가능하게 한 작가의 능력을 감탄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자막을 읽어주다 직업이 성우가 된 손열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선배 고수미가 투자 손실을 빚으로 떠안고 열매 돈을 훔쳐 사라진 사이 그녀에겐 우울증까지 와서 목소리까지 변한다. 어찌해서 기억한 선배의 고향이 완주라서 열매는 그곳에 스며들게 되는데, 그나마 고수미 엄마가 그녀에게 방을 하나 내준다. 자기 딸 빚을 방세로 퉁치려는 속셈이었지만, 그곳은 완주였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완주와 완주 나무까지 있는 그곳 완주는 어떻게든 완주해야 하는 우리 인생을 상징해서 완주를 해야 하는 아무튼, 완주.
선배 고수미 엄마는 암 환자에 직업이 장의사, 정체가 신비로운 어저귀라는 청년 강동경과 사춘기를 춤으로 때우려는 옆집 중학생 한양미, 한물갔지만 엄연히 배우인 정애라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용운 엄마까지 사는 완주, 여기에 모르는 게 없는 마을 이장과 개발 붐에 빠져 돈독에 오른 구 회장 등 개발파들과 어찌하다 보니 마을을 지키려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까지 살갑게 사는 그곳 완주에 손열매도 시나브로 스며든다. 이렇게 소설이 끝나면 섭섭하니 화재가 나서 소설 전개가 바뀐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범인 구 회장은 여전히 마을을 얼쩡거리고, 불로 인해 외계인인지 뭔지 어저귀가 사라져 그의 정체를 알 수도 없는 상황에 소설은 끝을 향한다. 그곳에선 손열매가 고수미를 찾아가 관계를 회복하고, 손열매는 성우의 길을 되찾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어느 날 열매는 버스에서 졸다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사랑에 관한 것. 사랑을 잃었다는 열매의 말을 사람을 잃었냐고 묻는 할아버지.
꿈속에서 두 정거장을 가면 집이 나온다고 말하는 건 할아버지인데, 그를 깨우는 익숙한 손길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비몽사몽 완주에 이를 수 있다면 끔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바랐을 때, 어떤 손길이 열매의 팔을 잡고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그는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