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기억, 때론 알츠하이머?

정한아(2025). 3월의 마치. 문학동네

by 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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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라는 단어가 있다. 원래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해야 정확한 알츠하이머는 그것이 주는 불안함으로 인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다들 걸려보지도 않고 느끼는 이런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무엇을 망각하거나 기억하는 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알츠하이머는 뭔가 불행이 결부된 것처럼 여겨진다. 전자는 나이가 들건 말건 벌어지는 일이지만 알츠하이머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도 모두 다 걸리지 않으니 다행?


알츠하이머는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보니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뇌 속에 쌓이면서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 질환이다. 여기서 핵심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면서 뇌세포가 손상되어 점차 시간이 가면서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말한다. 나이에 방점을 찍으면 젊은 사람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아주 낮다고 이해되니 다행이지만. 반복하지만 당신이나 나나 걸려보지도 않으면서, 그러니 잘 모르면서, 불편해하는 감정은 뭘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사람은 자기가 걸린 그걸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다. 증상이나 경험을 말이다. 이건 오로지 타자가 느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사자는 기억이 없으니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 병에 걸린 주변 사람들이 전하는 불안과 공포를 우리가 느끼는 것인데, 누가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후 이를 경험한 얘기를 알려주면 좋겠지만 이건 불가능하겠지? 그러니 이걸 경험해 보자고 말하면 내게 들려올 온갖 F 소리들이 예상된다. 그런데,


이걸 소설로 쓴 이가 있다. 소설 제목은 《3월의 마치》이다. 3월에 태어나 이름이 마치(March)인 60세에 접어든 한때 잘 나가는 배우였던 주인공이 알츠하이머 전단계라고 진단을 받는다. 그나마 전단계라서 언젠가부터 기억이 새고 사라지는 걸 자각하게 된 것이고, 그는 이걸 조각조각 맞춰보면서 그가 잊었던 무언가에 대한 기억과 아픔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 이유는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그것이 비록 고통이라도 그걸 기억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들을 통해 자기를 치유하려는 것이고.


스물넷에 공채로 드라마에 등장한 마치는 키가 170센티미터에 중성적인 이미지로 텔레비전과 영화, 광고계에서 인기를 구가하는데, 남편과 이혼을 앞두고 아들 정민이 실종되면서 그녀 인생이 더 꼬인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건망증과 환청으로 인해 결국 그녀는 은퇴를 하고,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을 찾는다. 그런 후 받은 진단 결과가 알츠하이머 전단계. 알츠하이머가 아니라서 다행이겠지? 다니던 병원 노의사가 자기 제자인 젊은 의사 제제한테 그녀를 소개해 준 이유는 그 의사가 새로운 치료방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건, 환자에게 남은 기억을 되살려 뇌 지도를 만들고, 그걸 토대로 가상현실을 만들어 그것이 구현되는 VR 속에서 그나마 남은 기억을 유지하도록 한다.


그런 어느 날 병원에서 그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미 택시 기사가 그녀를 알고 있다. 이런 환경은 다름 아닌 그녀가 VR안에 있다는 것. 그 후 그는 60층에 위치한 그의 집에 오르려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는 60층을 걸어서 오른다. 결국 그의 집에 오르는데 각각의 층이 의미하는 건 그가 살아온 세월을 말한다. 결국 꼭대기 층에 오른 그녀는 그곳에서 어느 여성을 만난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세 살. 마치는 한눈에 바로 마흔세 살의 여성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건 그녀였다.


그 후 그는 층을 내려가면서 여자를 만나는데 그건 나이가 다른 그이면서, 그 나이에 맞는 기억을 갖고 있는 그였다. 이건 그가 지난 기억들을 기억해 냈다는 것이다. 비록 VR 속에서 이뤄진 기억이라도 그건 엄연히 그의 기억이었으며, 병이 다음 단계로 더 진행된다면 틀림없이 잊힐 그녀의 기억. 그 속엔 역시나 그가 기억하는 그의 남편과 딸과 잃어버린 정민까지 있었다. 누구나 언젠가 끝나는 그 층이 각각 다른 그 층이 마치에겐 70층으로 끝나는데, 비로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의 풍경으로 보게 된다. '아직도 삶이 놀라웠다'라고 하면서.


소설이 이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장이 하나 더 남아 있다. 이마치가 아들을 잃은 이후 유령으로 VR에선 노아로 마지막엔 최고의 파도를 경험한 서퍼로 나온 나는 '나의 마치'로 소설을 끝낸다. 기억 너머 저편으로 간 마치를 기리며. 자 그럼 질문을 해야겠다. 당신은 살면서 무엇을 기억하고 싶고 무엇을 잊고 싶을까? 혹은 알츠하이머는 모든 기억을 앗아갈 텐데, 앗아간다는 걸 기억조차 못 할 텐데, 이건 행복한 걸까? 불행한 걸까? 아니, 누구든 언젠가 가는 그곳 너머엔 뭐가 있을까? 이것도 경험해 보자고 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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