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아(2023). 달의 바다. 문학동네
이대가 운영하는 갈빗집에 딸이 한 명 있다. 이름은 은미. 5년 동안 43번 시험을 쳤어도 기자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마련한 돌파구가 자살이다. 약을 잔뜩 모아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려는데, 할머니가 숙제를 시킨다. 미국에 갔다 오라고. 까짓 시험이야 다음에 또 치면 되고 미국에 바람도 쐴 겸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특명 아닌 특명은 결과적으로 마치 달에 있는, 누군가의 검은, 바다를 보고 오라는 말과 같았다. 그러니 작가가 소설 제목을 그렇게 정했을 테고. 어쨌거나 달에 바다(lunar mares)가 있다고?
지구에서 바라보이는 달의 전체 면적 중 30%가 바다라고 부르는데, 진짜 바다가 아니고 현무암으로 이뤄진 부분은 빛을 반사하지 않아 대부분 어둡게 보이는 부분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달에 바다가 붙은 지명만 12개나 되니 그냥 바다 하나로 퉁쳐야겠다. 지구에서 볼 때 어둡게 보이는 그것을 바다라고 부르다니. 바다는 푸르게 보이지 않던가? 달에선 지구의 바다가 그렇게 보일 텐데 말이다. 암튼, 할머니 딸 고모는 16년 전에 미혼모로 자기 아들 찬이를 남겨두고, 미국 놈 만나 미국으로 떠났던 인물이다. 그런 고모는 은미가 기억하는 것처럼 여전히 발랄하고 당찰까?
할머니가 여행 경비를 넉넉하게 주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절친 민이와 함께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 항공우주국 근처, 고모가 알려준 주소 어딘가에 고모가 살긴 살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고모는 진짜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자기 엄마 할머니가 자기 딸이 틀림없이 우주비행사로 믿게 만든 편지는 몽땅 거짓말이었던 것. 자기 고모가 우주비행사라고 하면 자랑스러워할 만한데, 은미는 할머니와 달리 어딘가 미덥지 못했다. 가서 보니 고모는 우주테마파크인 아폴로 센터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나마 종업원은 아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모가 진짜 우주비행사인지 긴가민가 만든 건, 고모의 편지가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한 것을 포함해서, 그 편지를 통해 우주비행사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접하다 보면, 살다 보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그런 질문조차 어떨 때는 넘어서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란 것을 작가가 이미 깨달은 건 아닌지. 달에서 보면 틀림없이 아름답게 보일 지구의 그 푸른 바다가, 지구에서 보면 그저 어둡게 보이는 그걸 바다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기대'와 다른 어긋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어릴 때 기억하는 고모라면 편지 그대로 성공적인 우주비행사로서 살고 있어야 했다. 그 먼 미국 땅에서 만난 고모는 내가 느낀 실망과 아쉬움 그 자체로 그려져야 하건만. 나름 고모는 자기가 감내한 인생이 거친 달의 표면처럼, 혹은 밝기만 하지 않은 우리 인생처럼, 어두워 바다라고 표현한 그것처럼, 달의 바다를 그저 검은 바다처럼 그의 인생에서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그곳 낯선 땅에서 실패라고 불릴 지난 과거를 가슴에 꼭 담아두고 여전히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당당하게 받아들여 살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발병한 세 번째 폐암조차도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은미는 그곳에 가져간 수면제를 묻어버린다. 자살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다음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집으로 돌아와 고모 집에서 주운 돌로 고모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주는 운석이라고 속이는 장면, 둘은 친구 민이가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선택한 성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고 성전환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는 장면, 세 번째는 어느 날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고통 끝에 받아들이는 고모 아들 찬이, 마지막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으러 이대 갈비에 신입사원으로 취업하는 은미.
그렇게 은미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기대와 다른, 받아들인다. 달의 바다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건 고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모가 왜 미혼모가 되었는지, 왜 자기 아들을 버리고 미국으로 갔는지 등에 대한 답은 없어도, 정확히 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굳이 왜를 물어보지 않아도 이해할 것 같은. 어쩌면 그냥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지. 당당하게 살면 더욱 좋고. 그것이 어찌 되었든. 무엇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