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정유정(2014). 히말라야 환상방황. 은행나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로 불리는 브라이슨이 들었으면 섭섭했겠다. 근데, 브라이슨은 정유정이 누군지 알기나 알까? 처음에는 재미있어, 두 번째는 그의 박식함에 놀라 읽게 되는 책들. 정유정이라고? 브라이슨이 그런 작가의 반열에 오른 배경엔 그가 저널리스트라는 것도 한몫 분명히 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라서 어떤 근거를 반드시 제시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줄 아는, 철저히 훈련된 사람처럼. 아니, 기자처럼. 게다가 그의 유머란. 그의 유머 코드, 비록 서구적이긴 해도, 그 유머에 익숙하거나 즐기는 사람이라면 감탄하게 되는데...
정유정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내 심장을 쏴라>때문이다. 정말 몰입해서 읽었던 소설. 그래, 소설이다.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을 한 번만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쩌다 읽다, 반드시 찾게 되는, 자연스럽게 다른 소설들도 읽기 될 수밖에 없는 그의 역량이란. 그런데, 잠시 옆길로 새고자 했다. 책의 제목 때문인데, 책 제목이 <히말라야 환상방황>이다. 아, 히말라야. ABC(Annapurna Base Camp) 트레킹이니 EBC(Everest Base Camp) 트레킹이니라는 단어를 들어만 봐도 설레었었는데. 그런 영향으로 주저 없이 골랐다. 이 책을. 소설은 잠시 건너뛰기로 하고.
역시, 후회 없다. 달랑, 소설. 그것도 정유정의 책 한 권 읽고 반해서 다른 책 읽으려다, 그의 첫 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책을 선택하자마자 읽기 시작했었는데. 역시, 소설가였다. 타고난 쌈꾼처럼, 그는 에세이에서도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오줌인지 큰 것인지 참으려 산에서 내려온 그 짧은(?) 시간 동안보다, 내 마음은 더 급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소설보다 더 좋았다. 왜냐고? 우선, 여행을 좋아하고. 그녀보다 더. 이건 확실할 것도 같다. 그것도 트레킹. 음, 이것도 그럴 것 같다. 여기에, 그렇게 가고 싶던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이라니. 뭘, 망설였겠는가.
사실, 내용이, 문장이 웃긴 것은 알겠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가면 정말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지만, 내가 간 것도 아니고. 내가 고생한 것도 아니고. 남이 가서 고생한 내용인데, 재미있다. 그 배경엔 그녀의 작가로서의 탁월한 역량이 있지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생각만 있고, 실행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많았지만, 어찌 보면, 이런 무모할 수도 있는 그녀의 도전 정신이 멋진 책을 쓴 원천인 것 같다. 나 대신, 능력이 안 되겠지만, 남이라도, 그 남이 정유정인데, 이렇게 멋진 여행 에세이를 쓰다니, 뭐가 아쉬울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소설 <28>을 쓰고 나서, 번아웃 때문에, 여기에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주인공 승민이 그렇게 그리워하던 신들의 땅 히말라야기에 망설임 없이 떠났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런데, 작가가 어떤 사정 때문에 그곳에 갔건, 써낸 혹은 써진 결과가 좋으니, 한편에선 역시나 작가적 역량이 정말 부러웠다. 그것도 웃기는 능력까지. 웃기는데 그것도 문장으로. 그래서, 이 책 한 권이긴 하지만, 빌 브라이슨보다 더 웃긴 작가 같았다. 실제 내가 갔다면, 그렇게 웃겼을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을까? 그래서 보람이 더 켰겠지만. 여기에, 짜증까지 쉴 틈 없었겠지만. 물론, 브라이슨도 <나를 부르는 숲>을 통해 그녀와 쌍벽임을 일찍이 증명했지만 말이다.
다시 상상해 봐도, 내가 안나푸르나 라운드 서킷을 갔다면, 당연히 힘들고 지치고 어려운 순간들을 묘사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그런 와중에 그런 유머라니. 어쩌면 이 작가는 지리적으로 히말라야에 가서 그 힘들다는 쏘롱라 패스를 넘었다는 그 사실보다도, 그녀가 쓴 소설들을 통해 이미 '쏘롱라 패스"를 수없이 넘나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내공이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랬다. 어쩌면 이 작가는 자기 인생에서 그 힘들다는 쏘롱라 패스를 몇 번 넘나들던 공력이기에 이런 웃기면서 재미있는 여행 에세이를 쓴 것은 아닐는지. 그래서 나한테 묻고 싶다. 넌, 너의 인생에 쏘롱라 패스 넘었냐고 말이다. 쏘롱라 패스가 있기나 한 건지... 묻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