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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낮도 아니고, 밤이라...

[책 여행] 정유정(2011). <7년의 밤>. 은행나무.

by 길문

제목이 7년의 밤이다. 7년의 낮이었다면, 이런 내용이 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낮이 치열한 생존이 이뤄지는 시간 아니던가? 밤은 휴식, 편안함, 안식, 내일에 대한 기약 등으로 생각될 수 있다. 밤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럼 밤은?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 수준이라도, 생태계에서 보면 밤도 결코 편안함과 안식으로 기대될 수 없다. 밤도 낮 못지않게 끊임없이 투쟁이 이뤄진다.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밤이다. 밤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아니 작가가 느끼는 감정이 부정적인 것 같다. 애초에 7년의 낮이라고 제목을 정했을 생각도 없었겠지만

밤은 단순히 낮의 반대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소설 속 사건이 다 밤에 이뤄진다. 낮이 아니다. 보통의 인간들에겐 낮에 생존경쟁을 하지만, 일부 범죄 등이 밤에 이뤄지기도 하니 이때, 밤은 선의 반대인 악으로 빛의 반대인 어둠으로 묘사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제목이 밤이었을 텐데.


우리는 통상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고 말한다. 이때, 역사가 범죄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러고 보면, 밤도 여러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소설에서 악이기도 한 오영제가 밤을 의미한다면, 최현수는 낮을 상징 할까?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남의 딸을 죽게 만든 행위가 '우연'이라면, 남의 아들을 죽이려는 의도는 '의지'이다. 이때, 후자를 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연과 의지. 소설의 시발점. 그렇다고 전자를 선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한 개죽음들은(개들이 싫어하겠다. 개죽음이라니...).


그런데, 밤이 7년간 지속된다. 밤이 7년간 지속되다니, 그만큼 고통의 기간이 길었음을 의미할 텐데, 이 고통은 온전히 현수의 아들 서원이 짊어진다. 옆에 항상 좋은 아저씨 안승환이 없었다면 서원도 없었을 테지만. 그런데, 이 밤은 기다림과 집착의 밤이기도 하다. 오영제는 복수를 위해 7년의 밤을 준비한다. 자기 딸을 죽인 현수에 등가의 고통을 안기려 서원을 이용하다, 엉뚱하게 무고한 사람들을 수장시킨 원인을 제공하지만, 소설은 이런 우연히 준 비극보다 아들을 지키려는 자와, 그 아들을 죽이려는 자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아들 서원의 어깨에 부려진 짐은 어땠을까? 그것도 7년간 짊어진 그 고통 말이다. 세상으로부터의 편견, 살인자의 아들, 그것이 끊임없이 작동되는 오영제의 장난 때문이지만. 그래서 궁금해진다. 서원의 구원은 사형이 집행된 아버지의 죽음과 오영제의 구속으로 얻어질까? 아마도, 지난 7년 간이 밤과 어둠인 것은 맞지만, 앞으로 그가 맞부딪칠 현실이 과연 밤이 낮으로, 어둠이 빛으로 변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나를 부르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한순간, 파란 셔츠의 손을 뿌리치고 뒤를 돌아보던 그 순간, 무수한 얼굴들 사이에서 아저씨를 찾던 짧은 순간, 카메라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섬광을 뿜었다. 나는 빛의 바다에서 홀로 섬이 되었다(p. 8)."


그러고 보니, 서원이 느낀 7년은 밤이나 어둠이 아니었다. 섬이었다. 고립, 외로움, 두려움, 단절. 그것도 세상으로부터. 어둠과 밤보다도 더 고통스러웠을 섬. 그래서, 육체적으로 영어의 몸인 아버지 현수가 정신적으로 고립된 아들 서원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사실, 아들이 느낀 고통은 모두 아버지로 인한 것인데, 아버지의 부재가 세상에 각인된 후 서원은 아버지로 인한 원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멈춰야겠다. 소설이 말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구원'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그냥, 때론,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생이란 굴레에 그래 '예스" 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현명한 것이 아닐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아들이라면 말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바람이 모자를 벗겨 멀리 날려 보냈다. 잿빛 대기 속에서는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7년 전 그때가 밤이 시작되던 시간이라면, 지금은 밤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영정을 반듯하게 잡고 취재진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빛의 바다를 건너 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나와 아버지를 놓아줄 것이므로(p.516)."


아, 딴 얘기.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여기엔 남한테 멋지게 보이는 투수가 항상 관심의 대상이기에. 물론, 야구가 투수 게임이라고도 하지만. 그만큼, 투수가 중요하지만. 이 글을 읽다 보니 포수의 역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포수라. 투수에게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미치는 포수의 영향이라니. 이를 알게 된 게 소설 때문이지만, 그래서 그녀가 쌓은 명성이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 들인 엄청난 노력에 기반한 것이라, 이래 저래 작가 정유정은 대단하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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