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 매캘리스터(2023).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시옷북스
〈사랑의 블랙홀〉(1993)이란 영화가 있다. 코미디언 빌 머레이와 배우 앤디 맥도웰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로 타임 루프가 주요 소재이다. 과거 같은 장소와 시간으로 돌아가지만 그때 처한 상황을 조금씩 바꾸면서 주인공이 사랑을 쟁취하고 현재로 돌아온다는 내용. 자기중심적이고 냉소적인 기상 캐스터가 따듯한 사람으로 변하는 내용인데 타임 루프에 빠졌다는 건 그만 아는 일이다.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2023)은 소설이다. 주인공 젠이 타임슬립에 빠져 아들이 왜 살인자가 되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이건 스릴러이다.
10월 어느 늦은 밤 열여덟 살 아들 토드가 집 앞에서 낯선 남자를 죽인다. 토드는 경찰서로 끌려가고 망연자실하던 자신과 남편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다 잠시 눈을 감다 뜨니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그건 젠만 알게 된다. 이때부터 시간이 때때로 과거로 점프한다. 처음엔 하루 이틀, 나중에 몇 주에서 몇 년까지 돌아간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지난 과거와 이미 겪은 미래를 엮어보려 노력하지만 이걸 본인만 겪는 일이라서 세상은 무심하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자기 아들 미래가 걸린 일이라서,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기에,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시간이 왜 거꾸로 흐르는지 그 이유가 있을 거란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인생이라면 미치고 환장할 것 같다! 결국, 미래에 벌어졌던 어떤 일들이 어떻게든 과거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게 장르가 스릴러다 보니 독자로 하여금 헤어날 수 없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 시간이 역주행만 하지 않고 정주행도 하는데 그건 라이언이란 사람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오직 그만이 정주행을 하는 것일까? 힌트는 그가 경찰이라는 것. 그것도 잠입 경찰(under cover)이라서 목숨이 위태위태하다. 언제든지 범죄조직으로부터 신분이 드러날 수 있고, 노출되면 그 즉시 해코지를 당하니까. 그런데 경찰 라이언은 혼자 왜 정주행을 하지? 그는 젠의 가족과 무슨 관련이 있던 것일까?
소설 시작은 사랑스러운 자기 아들이 왜 사람을 죽였는가 이것이 궁금했는데, 대게 엄마가 그렇듯이 어떻게든 아들이 살인자가 되는 건 원치 않는 법. 미래를 바꿀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시간에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에 싸여 아버지가 죽는 순간을 그대로 남겨두지만, 젠이 엄마라서 그런지 결과적으로 지난 시간을 수정하게 만듦으로써 아들 토드가 누군가를 살해하지 않는데, 그럼 엄마 젠이 느낀 현재 아들이 누군가를 죽였던 사건은 없던 일? 그걸 엄마만 아는 현실이라서. 엄마만 타임슬립을 하니까??
결과야 그렇다고 치고 과거로 돌아가면 보이는 후회와 미련 혹은 왜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면 미래 어떤 결과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과거가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추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것 때문이라도 타임 슬립을 정말 해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암튼, 스릴러에 기반하다 보니 현재에 도출되었던 인물들인 코너와 클리오에 대한 서사와 경찰 라이언이 어떻게 그들 가족과 엮이는지 그 서술이 정말 촘촘하게 짜놓은 그물망에 갇히게 됨으로써 작가가 숨겨놓은 몇몇 실마리들을 늦게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아주 재미있는 건 영상을 볼 때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린 화면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선명해지는 그 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글로 엮었다는 것. 아들 토드에게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래에 그가 누군가를 죽이는지 추적하는 엄마에게 아기 포스터, 대포폰, 라이언이란 경찰에 대한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면 소설은 훌쩍 결론에 도달한다. 뭔가가 벌어졌던 사소한 실마리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때 사건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만들어지면서, 독자는 두 번 정도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남편 켈리가 범죄자 아냐?라는 의심과 경찰 라이언이 현재 자기 남편?이라는 내용이 그것인데, 이는 남편이 아내 젠을 사랑함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꾼다는 설정 자체가 어딘지 좀 미덥지 않지만.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소설 킨(2016)을 생각나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인 소설이란 건 부인하지 못하겠다. 이건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이라서, 이런 소설을 구상하고 쓴 건 인정을 넘어서지만, 작가 덕분에 보게 된 넷플릭스 영화 〈러시아 인형처럼〉또한 재밌었다는 건 밝혀야 할 것 같다.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