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텔(2022).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
“인생은 이야기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멋진 이야기를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럴 수 있을까? 내게 좀 더 멋진 이야기가 남았을까? 누구의 인생이든 인생은 이야기인 건 맞지만, 그 누구의 인생이든 파이처럼 멋진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이건 슬픈 것이다. 누구나 다 멋진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죽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택해야 한다. 사는 것도 선택이려니. 내가 산 모든 과정에서 선택한 그 무엇이 멋진 이야기라면 좋으련만. 아니면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산다면, 그게 가능하면, 아마 좀 더 나은 이야기가 선택될지 모른다.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소설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허구인지 던지는 의문이 의뭉스럽다. 소설인 줄 알고 있지만, 피신 몰리토 파텔은 허구의 인물이 아니고 배 또한 침몰했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가 한때 오래 바다에서 생존한 사람이란 건 허구가 아닐 것이다. 그저 이런 난감한 상황에 누구든 처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소설은 시작부터 웃긴다. 이름이 파이인 소년이 어떻게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가 어떻게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신을 믿게 되었는지 읽다 보면 그저 웃음이 나온다. 신을 사랑한 소년. 그것도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여기에 이름이 리처드 파커 호랑이 라니.
그런 그가 캐나다로 떠난다. 인도 사정이 좋지 않아 이민을 결심하는데 대게의 집안이 그렇듯 부모 의사가 중요하지 아이들 의사가 중요하겠는가? 집에서 동물원을 운영했는데 동물도 다 정리하고 떠난다. 나 참, 세계 여기저기 팔리는 동물도 떠나고 싶겠는가? 이건 사람 생각이지만, 이런 건 가슴 아픈 일이다. 동물이야 뭘 선택하고 말고 없으니. 이건 애들도 똑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그걸 받아들이는 그 자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사고도 마찬가지. 난파된 배에 혼자 살아남은 17세 소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까? 형도 없고, 사랑하는 아버지와 엄마도 없는 세상!
당연히 소설 이전에 영화를 먼저 봤다. 낯설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내내 의문을 품고 봤던, 그땐 인도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도 드물었던 때였을 것이다. 그 후 얀 마텔이 쓴 《포르투갈의 높은 산》(2017)를 읽었다. 맨 부커 상 수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알려준 책이지만, 그래도 《파이 이야기》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정말 단순했다. 도서관 서가에 꽂힌 표지가 예쁜 책, 그것 이상이 뭐가 필요했을까? 그런데 가슴 깊숙이 미진한 무엇이 남았었나 보다. 비교적 최근에 쓰인 소설에 치중하다 보니 생긴, 이제 달달한 것에 지쳤던 것이다.
이러니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리라. 여기에 인생은 이야기라니. 다른 뭔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 아님, 약간 가벼워진 처신과 행동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자꾸 구름 같은 세상에 나 또한 편승해서 대강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 이건 다 더위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더워서였다고 말이다. 뭔가 묵직한 뭔가를 건져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책 말미에 같은 사고를, 같은 인생을 다르게 각색했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아니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제시하는 부분이 압권이었다. 믿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믿도록 바꾸는 것보다, 파이처럼 극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를 던질 수 없다는 걸 한탄하는 것보다, 남은 인생 어딘가에 걸려있을 혹은 걸러질 그 무엇을 아름답게 채색하던가, 아니면 아름다울 때까지 살던가, 어쩜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를 무언가에 대한 가능성. 아직도 가능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든 건 다 파이 덕이었다. 이러니 이참에 나도 신이나 사랑해야겠다. 어디선가 리처드 파커가 어흥 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