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꽃님(2018).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문학동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고? 그건 모르겠지만 반대로 웃다가 울면 똥구멍은...... 모르겠고 두 눈에 눈물 바가지 장담한다!
어제 운동을 잘못했는지 새벽에 잠이 깼다. 사위가 어두웠으니 새벽이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지 않은 건 시간을 알면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먼저 냉장고문을 열었다. 운동을 했으니 몸이 피곤한데, 반대로 신경을 곧추세웠으니 잠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것이라 식곤증을 활용하기로 했다. 뭔가 먹으면 찾아오는 손님. 그러니, 배를 채우자!
냉장고를 열고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빵을 꺼냈다. 주말이 끝날 무렵이라 20% 정도 싸게 판 걸 뿌듯한 마음으로 뜯었다. 이런 것도 요령이겠지? 같은 빵을 다른 가격에 사니 도파민이 잠깐 샜을 것이다. 먹는 동안 잠이 달아나서 뭐 할까 궁리하다 집어 든 책. 혼자 흐뭇하게 익는 책이라니. 읽는데 어렵지 않을 거라고 기대한 건 표지에 있는 제8회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문구. 쉽게 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입가가 슬며시 벌어졌다. 본래 성인문학상보다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들이 더 감동적일 때가 많은 건 알았지만.
그러다 생각난 문장이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였다. 결론은 반대지만. 웃다가 운 꼴이었다. 잠시 후 생각했던 것처럼 많이 먹었으니 원했던 식곤증이 제대로 왔다. 그 후 여차여차해서 도서관에 왔었다. 오래간만에 들른 그곳을 둘러보며 책상에 앉아 든 책. 남은 분량이 얼마였더라를 고려 없이 그냥 읽어버렸다. 그리고 흐른 눈물. 안경을 꼈으니 벗으면 티가 날 것 같아 그냥 아무 일도 없던 듯 딴청을 부리다 화장실로 향했다. 마침, 휴지가 있었어도 앞에 앉은 누군가가 신경이 쓰였으니 그저 아무 일도 없던 듯 스며드는 뿌듯함을 즐겼다. 이런 감성이 내게 남았었나?
작가가 1989년 생이다. 주변에서 만류를 한 이유야 알 것 같지만 대학에서 꿋꿋하게 문예 창작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청소년문학을 제대로 보여준 역량이야 말해 뭘 할까 만은. 어찌 저 나이에 우리나라 쌍팔년도 이야기를 줄줄이 꾀고 있을까? 이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내가 살아온 이 땅에 뭔 일이 벌어졌더라? 잊힌 기억들을 하나 둘 끌어올려 주는 재미와 더불어 감탄스럽다. 세상을 바꾸는 시선과 의식이란 것이 꼭 전투적이 않아도 됨음을 알려준 건 고마웠다. 이것이 글이 주는 힘일 것이다.
은유는 어느 날, 그날이 2016년 1월 2일, 편지를 쓴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이건 아버지가 시킨 것이다. 15년 동안 엄마 없이 산 나는 아버지와 소원하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냈는데 곧 아버지는 재혼을 한다. 그간 나랑 서운하고 아쉬웠단 마음을 털고 가려나 싶었다. 새 장가를 가니 말이다. 그 기간 동안 부재한 엄마를 대신할 뭔가가 아쉬웠지만 재수 옴 붙은 것 같은 아빠가 시키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했었다. 그런데 그날 그렇게 쓴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언니?로 시작되는 1982년 7월 6일 편지. 그런데 이름이 나랑 같다. 이때까지 아빠가 쓰라고 해서 쓰는 편지 서두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여기서 잠깐! 심사위원 시인 김진경이 한 말을 인용하면. '문학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보다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가 중요하다'는. '가장 흔한 주제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적으로 어려운" 그 일을 해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중에서 알게 된다!!
엄마는 15년 전에 없어졌다. 아빠는 재혼을 할 예정이고. 그런 난 세상과 아빠에 대한 적대감에 편지를 쓰는 것이 시답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편지를 쓰면 답장이 기다려진다. 때때로 오는 그 답장이. 과거로부터 오는 편지는 시간이 이미 지났기에 빨리 흐르는지 과거 은유의 성장이 빠르다. 현재 은유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그러니 과거 은유가 현재 은유보다 머지않아 언니가 된다. 지금 은유는 과거를 몰라도 이미 과거란 데이터가 있어 과거가 어땠는지 알 건 다 알지만 과거 은유는 말 그대로 과거라서 그가 치를 학력고사와 IMF와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과거'를 아직 잘 모른다.
1999년 7월에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것처럼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으니 현재 은유가 있겠지만, 그건 과거 은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살아온 근현대사를 슬쩍 언급하며 이어지는 편지는 서로를 어떤 시간에서 서로를 어떻게 엮어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건 소설만이 가진 힘이란 건 정말 자명하다. 암튼, 현재 은유는 엄마가 정말 누군지 궁금했다. 어떤 엄마였을까? 그걸 알게 해 주기 위해서 아빠가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편지를 쓰자고 한 것은 나중에 드러난다. 2016년 1월 2일 현재 은유가 나에게 편지를 처음 쓴 그날, 아빠도 썼던 편지가 은유에게 도착한다.
소설임에도 시선을 끝까지 붙잡게 만든 것은 과거의 은유와 현재의 은유가 서로 공모를 하는 접점 때문이다. 아빠로부터 언급되지 않은 엄마는 분명히 과거에 존재했기에 과거의 은유를 통해 그걸 알고 싶었던 바람이 과거에 사는 은유에겐 미래를 알면 얻어지는 이익, 예를 들어 학력고사 문제를 미리 입수를 한다던가, 미래에 당첨될 로또 번호를 알 수 있다는 등의 유혹이 강렬했기에 서로 결속을 공고히 다진다. 그걸 밝히려 과거 은유는 고군분투를 하고. 그러면서 점차 드러나는 아버지가 누군지, 그 아버지와 결혼한 엄마는 누군지. 그럼,
서로 다른 두 은유는 어떤 관계일까? 소설은 엄마가 딸 은유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로 끝을 맸는데, 편지를 쓴 날짜는 2002년 11월 16일이다. 은유가 2016년 1월 2일 아빠가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썼던 편지가 따뜻한 곳에 살던 엄마한테 도착했던 것이다. 그날은 과거 은유가 진짜 과거가 된 날이고 그날은 현재 은유가 시작된 날이다. 그나저나, 웃다가 울면 똥구멍에 털은 확실히 안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