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2025). 혼모노. 창비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작가에게 말이다. 거의 3년 정도의 시간 차이. 작가가 쓴 전작 《빛을 걷으면 빛》(2022)을 읽고 느낀 점과 많이 다르다. 그때 몰랐던 작가 성해나 책을 읽으며 선물 같다고 표현한 건 말 그대로였다. 선물을 받으면 좋은데, 그 안에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얼마나 더 좋은가? 그런 감정이었다. 성해나 책을 읽으며 뭔가 젊어지는 느낌, 낯선 단어들이 돌부리처럼 걸려도 소설을 읽는 것이 즐거웠으니.
이 책도 그간 써놓은 소설을 모아놓은 책인데, 달랐다는 느낌은 전적으로 각각의 단편들이 정점에 오른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사이 상을 받은 숫자가 더해졌다. 이건 작가에겐 명예가 되겠고, 그건 소설들이 재밌었다는 말을 입증할 터였다. 여전히 글의 소재들이 누군가를 젊게 만들었으니 역시나 젊은 작가 상을 자주 받는구나라고 말하면 난 아재임에 틀림없지만 전작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읽다 보면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정말 다양한 관심과 지식을 쌓았을 거란, 이걸 기초로 보여주는 세상이란 단면을 깊이 들어가 보여주는데 이런 걸 어디 가서 느낄까? 덧붙여 그가 등장시킨 인물들이 주변부 인간들이라 안쓰럽지만 흡족한 건 내가 주변부 인간이라는 것도 틀리지 않지만, 이런 걸 보여주는 것이 그래서 느끼는 같은 사람이란 동질감이 소설을 살아남게 하는 동력이 될 거라는 생각. 이걸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르가 얼마나 될까?
혼모노. 역시 표제작이다. 보통 말하는 신빨이 다했다는 말이 뭔 말인지 알았다. 이런 거구나. 무당이 이러면 끝이겠지? 일본에선 '진짜'라는 의미로 좋게, 우린 '비정상적 행동을 하는 오타쿠를 비꼬는 신조어'라는데 신애기가 혼모노일리는 없을 것 같고. 신빨이 다해 장수 할멈이 떠난 건지, 할멈이 점지했기에 신빨이 생긴 건지 이건 아리송하지만, 신빨이 빠지건 할멈이 떠나건 이 말은 난 한물간 무당이란 것. 그가 노린 신애기와의 한판 굿은 할멈에 대한 복수였을까? 바나나우유와 바나나맛 우유와의 차이는 심연이 깊다. 더해 정치인 황보와 연결된 무속 세계라니.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프다.
스무드.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 수는 더욱 없는.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돋보기를 들이대면 보이는 것들. 누군가에겐 군복을 입고 세상을 호령하던 죽은 이가 아직도 가장 존경받아야 할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함께. 이러니 세상이 복잡하다. 태극기가 어느덧 독립과 자유의 상징에서 멀어진 현실. 한국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나 듀이가 일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그런 내 시선을 통해 바라본 한국은? 미국인들이 묻는다는 질문. 한국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왜 성조기를 흔드냐는. 오해 마시라. 난 이민자 3세지만 엄연히 미국인이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남영동 대공분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걸 설계한 이가 그 유명한 김수근이라니. 그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우선, 유명해지고 봐야 하는 걸까? 시대와 건축은 따로 논다고? 여기까지 시선이 미치다니. 이러니 성해나가 달라졌다고 느낀 것이다. 아니 원래 작가는 그랬을 텐데, 중요한 건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비록 단면이지만 드러냈다는 것이다. 폐부에 확 박히는 칼날!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변한 것일까?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니......
우호적 감정. 소설집에서 가장 평타? 같았던 소설. 여기서 중요한 건 평균타수라는 것. 작가가 들여다본 스타트업은? 역시 평균적인 나이를 넘어선 진을 데려온 건 대표 맥스. 나 알렉스는 아직 신진이니 시키는 대로 신규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매사 투덜대는 창업 멤버 수잔과 방 탈출 게임도 못하는 진과 함께 시작한 사업. 이번엔 마을 재생사업에 초점을 맞춘다. 마을 재생사업? 텅텅 비는 농촌을 재생시키는 게 사업이 될까만은. 한 팀으로 묶여 순항하던 세 사람이 위기를 맞은 건 어느 날 담당이 실수해서 공개된 상여금 내역. 이건 표면일 뿐이다. 회사에서 관계란 입안에서 얇은 피가 터지며 뜨거운 육즙이 흘러나올 때, 이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이건 마치 인생 같다.
잉태기. 원정 출산 얘기다. 원정 출산? 한물간 얘기라고? 누군가의 딸인 엄마가 곧 누군가의 엄마가 될 딸에 대해 보이는 애정에 대한 근사치. 이럴 것 같다. 같은 딸인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 여기에 시부까지 끼어든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두 사람과 그들이 보이는 권력관계. 요즘 이런 시부 가능할까 보다 역시나 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정말 지랄 같은 내 새끼 사랑은 진정 사랑일까? 최근 사교육비 지출이 30조 원을 넘어섰다는데, 이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 타는 딸아이야 온전히 다 물려받을 거라 줄타기가 묘미지만, 내 짐을 딸에게 지게 하는 건 과한 사랑인가?
메탈.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 람슈타인이 뭔지 몰랐다. 그래서 찾아보니 이런 헤비메탈 그룹도 있었구나. 여기에 모터헤드에 주다스 프리스트 등등. 헤비메탈 그룹이라니. 작가가 얼마나 메탈에 조예가 깊은지 모르겠지만, 그가 얼마나 주변인에 깊은 관심을 갖는지는 알 수 있었다. "잊고 싶었지만 깊숙이 잔존해 있던 여러 겹의 기억." 크면서 누구나 갖은 그 아스라이 사라진 추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우림, 조현, 시우는 우리처럼 고등학교에서 만난다. 공통점은 메탈 음악에 대한 격렬한 열기. 그땐 미래가 두렵지 않고 그저 한 길로 내달릴 수 있었다. 그러다 누군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살아간다. 다들 그렇게.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에 대한 팬덤 현상이 단순하지 않음을 알게 해 준 단편. 그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그들 안에서 어떤 바람이 부는지. 그러니 알게 된 길티 플레저라는 단어까지. 팬덤에 빠졌지만 그들이 느끼는 이 단어는 복잡하다. 그건 인간이 그러니까. 팬덤이란 무엇인가부터, 그 대상이 벌인 일탈에 대한 추종자 간의 윤리와 시간이 가면서 달라지는 그들의 감정의 변화까지 세심하게 그렸다. 호랑이를 만질 수 있을까? 야생의 호랑이 말이다. 그녀가 치앙마이에서 만지는 호랑이가 딱 그랬다. 누군가 좋아해서 팬덤에 빠지는 것이 꼭 그랬을 것이다. 호랑이 만지기. 힘 빠진, 길들여진 호랑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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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혼모노.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