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인생, 깨알 같은 작가?

김호연(2024). 나의 돈키호테.

by 길문

깨알같이 살면 깨가 쏟아질까? 어디선가 고소한 향기가 난다. 이건 전적으로 작가 덕분이다. 덥고 습한 날 시원한 메밀국수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 《나의 돈키호테, 2024》. 전작 《망원동 브라더스, 2015》, 《불편한 편의점, 2021》을 읽었기에 익숙한 작가. 당겼다. 지쳤나 보다. 더위뿐만 아니라 사는 게 말이다. 그러니 시원하게 읽기는 했는데, 중간에 지루했다. 전체적으로 소설의 전개와 사람들 간에 서로 맺는 '관계'가 익숙하다. 그럼에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힘은 세다. 역시나 흐뭇함과 함께. 사는 게 이렇게 달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덤이다.


작가가 소설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도 썼나 보다. 작업실을 제공받았다고 하니 말이다. 스페인 문화활동 국립협회와 토지문화재단이 지원해 줬다고 하니, 이건 작가가 그만큼 유명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텐데, 아마 《불편한 편의점, 2021》 때문인 것 같다. 정말 대박 난 작품이니 말이다. 이러니 유명해져야 한다? 내용 중간중간에 나오는 스페인어 회화는 MSG 비슷하다. 무해하다. 아쉬운 건 감칠맛까지는 아니어서. 소재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했으니, 스페인도 배경인 거야 당연한 거다. 이런 연유로 세르반테스의 고향 알칼라 데 에나레스라는 곳까지 독자를 이끌었다.


서울에서 세비야를, 부산에서 바르셀로나 등을 연상시키도록 한 건 유치했지만 어차피 전체 줄거리에서 눈밖에 날 정도는 아니기에 넘어간다 쳐도, 뭔가 익숙하다는 건 이중적인 것 같다. 그건 그 작가라는 특징이 되지만, 이것이 장편이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편혜영이 쓴 단편들을 읽으면 쓴 글들이 마치 템플릿에 의해 찍어낸 것 같다. 그러니 익숙한데, 그럼에도 매번 그 소재와 전개가 달라지니 읽는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건 호흡이 짧아서 그런 것 같은데, 이게 길면 이 소설(?)처럼 느껴진다?


소설에선 역시나 등장인물들이 사랑스럽다. 짠 내 나는 사람들 이야기라서 그것도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나니 안 그럴 수가 없다. 비디오를 다시 보려면 반드시 되감아야 한다. 지난 인생은 이럴 수 없으니 안타깝지만, 나만 그런 것도 아니기에 다행인데, 기억만큼은 되돌릴 수 있으니. 그럴 필요성은 어릴 때 노닥거린 '돈키호테 비디오'에서 남긴 추억 때문이다. 가게 주인 스스로 돈이라 칭하는 아저씨는 명문대 출신에 학생운동에, 유명한 학원 강사라는 건 나중에 밝혀지고. 그가 그곳에 오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꿈을 잃지 말고 세상에 나가 올바르게 성공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비디오도 보고 떡볶이도 먹고 토론도 했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린 건 주인공 진솔이, 한때 산초라고 불리던 그가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늦가을 외주 프로덕션 피디였던 그가 자기가 기획해서 성공한 프로그램에서 잘린 것이다. 공은 남들에게 돌아가고 빈털터리처럼 돌아온 고향 대전에서 시작한 건 유튜브 개인 방송이다. 놀고먹을 수 없다는, 진짜 놀면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작은 심히 미약하나 끝은 창대까진 모르겠고, 암튼 시작한 크리에이터 생활. 내용은 과거로 돌아가 돈 아저씨, 비디오 가게 주인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헤매다, 그때 같이 가게를 들락거렸던 '라만차 클럽 아미고'들과 연락이 이어지는데, 소설은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솔도 대전, 서울, 통영, 부산에서 나아가 스페인 마드리드와 세비야, 심지어 세르반테스의 고향까지 간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로드 소설은 아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앞에서 언급한 돈 아저씨의 진짜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난다. 누군들 캐고 다니면 드러나긴 하는 그 실체와 살아온 과정이 세르반테스가 그린 돈키호테처럼 돈 아저씨 인생도 그랬다.


아저씨 꿈은 나이 오십 넘은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떠난 모험을 그린 〈돈키호테〉를 필사를 해서 그걸 가지고 스페인 세르반테스의 고향에 가는 것인데, 이건 솔이 아저씨가 머물던 지하공간에서 그를 추적하다 알게 된 것이다. 원래 유튜브 프로그램이 돈 아저씨를 찾는 것이고 찾아 나섰으니 당연히 찾았겠지? 이런 내용으로 치열한 유튜브 경쟁에서 성공할까 묻지 마시라 그냥 넘어가자. 소설을 이러쿵저러쿵 따지다니!! 결국 3년 전 사라진 아저씨를 찾긴 찾는데, 결말은 읽다 뭔가 지루한 느낌을 한방에 날린 것 같았다.


소설가가 자기가 쓴 소설에서 소설가가 되는 누군가를 그리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투영이겠지? 성공적으로 '돈키호테를 찾아서'시리즈는 끝났으니 해피엔딩인데, 어느 날 소설가 반태수가 자기가 쓴 소설책 앞장에 '돈키호테 진솔에게, 반태수 드림'이라고 써서 솔에게 책을 보낸다. 제목은 《돈키호테 살인사건》. 누가 썼을까?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의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했던 것처럼 세비야를 찾아간 그날 돈 아저씨가 솔에게 한 약속. 소설은 무차스 그라씨아쓰. 나의 돈키호테라고 끝난다. 그러니 나도 한마다 해야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에게,


무차스 그라시아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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