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2020). 복자에게. 문학동
성명학(姓名學)이 있다. 사람들의 성과 이름을 조사, 분석하여 이름에 존재하는 일정한 법칙을 기초로 성명에 대한 길과 흉을 해석하는 학문(?), 은 아니다. 굳이 시작을 이렇게 한 건 이름 복자 때문이다. 촌스럽긴 하다. 요즘 부모가 자기애들 이렇게 지으면 자식과 평생 담쌓자는 거겠지? 미자, 금자, 숙자, 희자, 경자, 춘자, 옥자라는 선상에서 이해되는 이름. 전쟁통에 남자들이 많이 죽어서 그런 것인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런데 복자라?
제주도라 남자가 적으니 복자라고 한 것도 같고, 성명학에 따라 복 많이 받으라고 그런 것도 같고, 작가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서 복자(福者)라는 이름을 쓴 건 아닌지 과한 생각까지. 그런 복자를 만난 건 1999년 봄이었다. 그냥 초롱도 아니고 영초롱이라니. 이것도 성명학에 기초했을까만은. 초롱초롱 빛나는 이름을 가진 영초롱은 정말 초롱초롱해서 공부도 잘했다. 그러니 자기가 서울에 남아야 하는 이유를 부모에게 말할 정도까지 되는 거다. 어린 동생이 서울에 남았지만 그건 부모 뜻이라서. 집안은 거의 쪽박을 찬 상태였다.
제주도를 요즘도 삼다도라고 할까? 그곳에 고고리섬이 있다면 가보려 했더니, 고고리는 '이삭'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란다. 그러니 섬 고고리는 없는 것이다. 소설도 픽션이니까 일맥상통하다. 이러니 소설이 매력적이다. 그곳에 한 계절 머물 수 있던 작가가 언젠가 쓰고 싶던 제주 관련 소설을 그때 쓴 것이다. 우연히 머문 제주에서 그녀가 영초롱이가 되어 친구 복자를 회상하고 응원한다. 그게 가능했던 건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산재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건에 복자도 연루되었다. 자식을 안아보지도 못하고 잃은 엄마 심정은 어떨까?
누구든 그의 인생에 항상 행복만이 있을 수 없어서, 지난날들 중에서 어떻게든 미워했을 날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작가는 돌아봤을 때 미워하지 않을 어떤 날들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다 읽고 나니 그걸 잘 꿰었다고 끄덕이게 된다. 작가 김금희니까!
돌아와서, 기운 가세로 고고리 섬에 밀려간 곳엔 다행히 그곳에 고모가 있었다. 보건소 의사로 있는 고모 또한 중심형 인물은 아닌 듯한 건 집안 내력 때문인가? 올라간 서울에서 출세했나 싶었는데, 그건 연수원 성적이 4.2/4.3일 정도로 뛰어난 그가 학맥과 인맥을 나 몰라라고 살아가니, 그가 판사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이다. 대쪽 같아서 타협하지 않는 그녀는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문제 판사로 낙인찍혔다. 그러니 변방에 꽂힌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제주도에서도 '남달라'로 살아가는데, 그사이 초등학교 동창들과 관계는 소원했다. 지나간 거니까.
그걸 굳이 연결한 건 고오세였다. 초등학교 동창. 제주도 지원에 왔기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질 기억을 기어이 잇게 한 그로 하여금 어린 기억들이 하나 둘 기억날 때, 복자 관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산업재해로 간호사들이 아기를 잃은 사건을 자기가 맡게 될 것 같은 예감이 틀리지 않았지만, 남달라에 기껏 배석판사인 나로 인해 긴장감이 판사들 사이에서 조성되고, 결과적으로 복자 관련 사건은 사람들의 바람처럼 승소를 하지만, 이렇게 끝나면 이름에 복자가 괜히 들어갔을까? 그럼 성명학은 학이 아닌 변설이 될 수도 있었다.
누구에겐 제주는 휴가철 찾는 명소이거나, 그러니 바가지 쓰고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묵계의 섬이거나, 혹시나 작가처럼 머물 기회가 제공되어 사색과 숙고를 거쳐 소설 한 편 뚝딱 써내는 아름다운 섬이 될지, 여전히 제주 4· 3 사건의 흔적이 남아 현대사가 그리 깨끗하지 않았음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치더라도, 섬인지라 육지와 고립될 수밖에 없는 걸 이어지게 만든 건 국정 농단 사건과 판사 블랙리스트 파동이었다. 이걸 작가는 잘 버무린 것이고.
친구 복자건이 아니어도 영초롱이 살아갈 이 세상은 적절한 기득권과 출세가 범벅이 된 곳이라, 섬인 제주도도 별 수 없으니 벅찼었나? 영초롱이는 법복을 벗고 파리로 떠났다. 그 후 전달된 복자 사건은 굳이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최종 승소한 소식이 들려왔기에, 복자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러니 제목이 복자에게,라고 된 것이고. 간호사들이 승리한 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피땀 흘려가며 싸웠기 때문이고. 편지란 것이 쓰다 보면 지난 일들이 회상이 될 테니, 작가가 그걸 결코 미워할지 않은 나날이라고 한 것이고.
지난 건 후회해도 소용없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지만, 어쩌다 읽게 되는 그가 쓴 소설들 중 《대 온실 수리 보고서, 2024》처럼 이 글도 적지 않게 작가가 공부해서 쓴 걸 감안하면, 소설이라고 해서 마냥 픽션을 난사할 수 없다는. 결국, 굳건히 현실을 지르밟고 쓸 수밖에 없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더해, 그가 쓴 《경애의 마음, 2018》부터 《첫 여름, 완주, 2025》까지 이런 작가는 정말 오래 독자에게 사랑받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아, 이름은 촌스러울 수 있으나 촌스러운 인생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