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끝나지 않았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클레어 키건(2025). 너무 늦은 시간. 다산책방.

by 길문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는 문장은 아주 희망찬 말이다. 살면서 이 말만큼 희망을 주는 말도 많지 않다. 그런데, 이걸 사람 관계에 적용하면 좀 무서운 생각이 든다. 끝날 관계는 빨리 끝나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이 '나쁘게 끝나지 않았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란 말'이 더 나은 것 같긴 한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말이다, 우여와 곡절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라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걸 남녀 '관계'에 대입하면?


무심코 발견한 문장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우연히 책을 다시 들추다 찾아낸 문장. 이런 문장이 있었나 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난망이라면 한 번 생각해 볼 문장이니까. 이걸 구체적으로 남녀관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남녀관계의 본질은 뻔함에도 과정이 경우의 수가 아주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기에, 남녀관계에 작동하는 끌림과 끔과 적당한 줄다리기까지, 만나기까지 우연도 작동하지만, 헤어지면 남는 미련과 아쉬움까지 나쁘게 끝나지 않았다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고 적용하긴 무리인 것 같다. 그러니 남자건 여자건 깨끗하게 끝내야 다음 오는 버스도 기다려봄 직할 것 같다.


사회도 변하고 세대도 젊어질수록 달라지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가벼워진 것을 감안하면, 나쁘게 끝나지 않아도 끝나는 관계는 무수히 많을 것 같다. 그걸 듣기 좋게 쿨~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글쎄다. 남녀관계 그 끝이 어때야 하는지 정답이 뭔지 모르겠다. 대게 여자는 지난 일을 과거라 묻어두는 것 같고, 남자들은 떠벌리면서 그걸 시행착오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프랑스에선 이 책 제목을 '여성 혐오'라고 했다는데, 이 책에서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갖는 감정이 여성 혐오가 맞다면 마지막 단편 〈남극〉은 여성 혐오와 무슨 관계일까? 일상을 살아가는 여자가 일탈을 꿈꾸다 실행에 옮겼는데, 재수 없게 하룻밤을 즐긴 남자가 그 여자를 영원히 구속시키는 상황까지 간 것이라서 여성 혐오? 여자도 하룻밤 즐길 수 있으니 혐오하지 말라고 쓴 소설인가? 하루를 즐기는 여자와 여자를 소유하려는 남자 누가 더 나쁜지 말하는 소설은 아닌데 말이다. 단편 제목이 〈남극〉인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약간 개연성이 떨어진다. 39세 생일날 세계적인 문호 하인리히 뵐의 저택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여자가 아주 무례한 독문학 교수의 방문을 받는다. 반드시 받아야 할 방문이 아니라면 받지 말아야 하거늘, 이래서 약간 갸우뚱했던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는 레지던스가 섬에 있기에, 상황이 남다른 건 맞는데, 그러니 방문을 거절하는데 굳이 방문하는 남자는, 그걸 굳이 그려내는 작가는. 손님이 온다기에 꽃도 꽃병에 꽂고 케이크도 내놓는데, 그걸 맛있게 먹은 남자는 그녀에 대해 비난과 설교를 한다는 설정. 이러니, 그녀는 복수를 한다. 글에서, 남자를 등장시켜 그가 암에 걸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른다는.


〈너무 늦은 시간〉은 너무 늦게 결혼이 왜 파탄 났는지 깨달은 남자 이야기? 주인공 카헐은 우연히 2년 전 헤어진, 정확히는 자기를 파혼한 여자 사빈을 떠올린다. 소설 속에서 남자 카헐은 반지 크기를 조정하는데 드는 비용조차 아까워하는 사람인데, 이건 아버지를 이어받은 것 같다고 고백도 한다. 쪼잔하고 좀스러운 남자인 카헐 같은 남자를 알고 결혼할 것 같은 여자가 얼마나 될까만은, 이걸 검소하다고 좋아할 여자도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런 주인공을 굳이 내세운 이유는 뭘까? 이런 쪼다 같은 남자가 여자들은 허영과 사치의 대명사라고 그걸 사례로 들어 말한다면 작가는 뭐라고 답할까?


책 한 권에 단편 3편이 실렸는데, 무려 처음 단편과 마지막 단편과의 시차가 크다. 마지막 단편 〈남극〉은 1999년에 출간된 첫 번째 단편집 《남극 Antarctica 》과 같은 제목이고, 두 번째 단편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2007년에 출간된 두 번째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실렸던 글이며, 〈너무 늦은 시간〉은 2022년 《뉴요커》에 실린 것으로 세 개의 단편만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한 부제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니, 이건 세 개의 글로 끝날 수 없어 충분한 것 같지 않다.


각각의 단편들을 묶는 공통점이 남자들이 여자들에 갖는 여성 혐오에 대한 이야기, 그걸 온전히 드러내는 소설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소품 같다. 이런 시선에서 남자를 보면 반대로 여자들이 갖는 일종의 어떤 특성들을 보는 남자들의 반응은 더 신랄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작가가 보여준 역량이 뛰어나 검은 머릿속에 흰머리 한올 지적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청명해야 할 가을 날씨가 계속 꿀꿀해서 느낀 소회 아닐까 위안을 삼으면서도, 작가가 쓴 《이처럼 사소한 것들》과 《맡겨진 소녀》가 주었던 감흥은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아일랜드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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