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은, 아니 미친.

서맨사 하비(2025). 궤도. 서해문집.

by 길문

나라면 어땠을까? 미쳤을 것 같다. 아니, 미치지 않았을 것 같다. 기껏 하루 만에 미치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누가 내 주위를 하루에 16번 돌면 미칠 것 같다. 미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하루만 걸리지는 않겠지만. 정말 다행인 건 내가 도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운명이다. 내가 우주비행사를 선택한 것이고, 그걸 하라고 우주선에 타고 우주정거장에 간 거니까. 미치는 건 운명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왜냐면 어느 우주인도 미쳤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세계 전도가 있다. 그것 위에 궤도가 그려져 있다. 제목이 뭐였는 고 하니 '북반구가 낮일 때 지구 궤도의 24시간'이라고 되어 있다. 궤도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16번이 가장 높은 숫자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지구를 16번 돈다는 의미이다. 그걸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 그건 궤적이라고 불린다. 지구를 뭐가 16번 돌까? 하루에 16섯 번을 도는 건 우주정거장이다. 그걸 따라 소설도 16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궤도 번호가 달라지면서 내용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게 무려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기준으로 하니. 혹시나 다른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하루 시간대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살아생전에 그럴 확률이 별로 없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기서 살아생전은 내 기준이지만 남들이라고 별 수 있겠나. 나도 유한하고 남들도 유한할 테니. 우리도 이제 다 알고 있다. 지구 밖에도 우리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외계인이 아니지만. 그걸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런 그들의 선택이 순간 부러워졌다. 밖에서 지구를 볼 수 있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하니까.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건강도 해야 한다. 그러니 아무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 자꾸 길어지는 건 감동 때문이다. 처음 소설을 읽고 나서 그냥 그랬다.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SF 소설이라기도 그렇고, 극적 전개도 없고 딱히 흥미를 돋우는 스토리도 갖지 않은데, 여운이 많이 남는 건 정말 딱 하루만이라도 우주정거장에 머물 수만 있다면 하고 가정을 하니 그들 삶이 달라 보였다. 크게 보면 이렇게 단순한 삶이 있을까 싶다. 별날 것도 없을 것 같은 건 매일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해야 하고, 그것도 매번 같은 여섯 명과 일을 해야 한다. 이러니 미칠 것도 같다. 그 여섯 명 중에 누군가 싫은 사람이 있으면 꼭지가 돌겠지? 싫어도 같이 생활하고 일하고 서로 의지해야 하다니. 이걸 이기는 방법은 같이 미치면 될 것도 같다. 그럼 누가 미쳤는지 모를 테니.


작가가 소설을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 우주국(ESA) 자료, 실제 우주를 갔다 온 사람들의 경험 등에 기초해서 글을 썼기에, 일부 장면들은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익히 아는 장면들도 있지만, 그걸 소설로 씀으로써 그 경험을 누구든 추체험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든 건 인정해야 한다. 어쨌든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그걸 알 수 있게 해 주다니. 놀라운 건 그곳에 가보지 않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내게 생생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건 정말 아이러니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거겠기에, 부커 상을 탔겠지만. 작가 자신도 가보지 않고 남에게 감동을 주다니.


로만, 안톤, 피에트로, 숀, 치에, 넬.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H자 금속체 안에 머무는 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 화장실 문제로 치졸함을 드러내는 두 명의 러시아 우주비행사 얘기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곳은 우리가 매일 뉴스로 접하는 시끄럽고 거친 문제들은 없기에, 지구와 인간에 대해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었을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같은 일들에 대해 어떻게 이겨낼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라면 미칠 것 같은 그 상황을 이기게 만든 건 지구가 있었기 때문일까 한다. 내려다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 직접 본다는 건 소소한 사건들이 아니다. 태풍이 필리핀을 덮친다던가, 맹렬한 불길이 아마존을 태워버린다던가, 더욱이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우리가 드러낸 욕망이라는 생각까지 등치 하면.


그들도 결국 언젠가 지지고 볶고 싸우는 지구로 돌아오겠기에, 그런 생각을 한다고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없어진 것 아니지만. 우주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일 지구라도, 그곳에 사는 인간이라도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들 삶을 이해하기 앞서, 나 같은 누군가는 그냥 단 하루만이라도 내가 살아가는 블루 마블(The Blue Barble)을 내려다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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