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반대말은 망각?

페트라 펠리니(2025).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북파머스

by 길문

열다섯 살 린다는 아직 어리다. 더 성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세상을 보는 시각은 어른을 넘어선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조금씩 젊어지는 것 같다. 그럴 리가. 다시 정정을 하면 젊어질 것 같다가 맞을 것 같다. 읽어서 젊어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뭐든 더 읽으련만. 그런 느낌을 주는 건 모든 것이 열다섯 살 소녀 린다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린다가 보는 세상, 분명 염세주의자 같은 케빈과는 다르지만 케빈을 이해하는 것으로 봐서 애늙은이임에 분명한 그녀의 꿈은 엉뚱하게도 자동차에 뛰어드는 것이다. 자동차에 뛰어들다니?


결국 자동차에 뛰어들었으나 살았다. 그럼 꿈은 반만 이뤄진 거다? 케빈처럼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면 즉사를 했을 텐데. 케빈이 죽기 전에 쓴 편지엔 '유일한 내 친구 린다에게'라고 적혀있다. 린다와 케빈이 다툼을 벌이다 린다가 가버리면 케빈이 "린다 돌아와"라고 말했던 것처럼 죽은 케빈에게 "케빈 돌아와"라고 생각하니 캐빈이 죽었다는 고통을 그녀가 온몸으로 느낀다. 린다가 느꼈을 이런 슬픔이 독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이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케빈 돌아와"란 말이 슬픈 건 그가 그녀에게 쓴 편지봉투에 유일한 내 친구라고 했기 때문이다. 유일하니까 오히려 의지해서 자살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넘어가버린 케빈. 어린 친구들이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소설 제목이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라서 원제도 그럴까 해서 봤더니 제목은 Der Bademeister ohne Himmel이다. 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하늘이 없는 인명구조원이라고 번역해야 할까? 아무튼 우리 번역은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이니까 이를 기초로 하면, 그날은 린다가 후베르트를 돌보는 날이다. 아침부터 밤까지는 아니고. 같은 건물 4층에 사는 노인 후베르트를 그날 오후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결과적으로 이건 후베르트를 돌보는 요양보호사 에바를 도와주는 것도 된다. 누군가를 일주일 내내 돌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될 테니까. 그럼 그들 관계는 뭘까?


정확히 왜 어떻게 린다가 후베르트를 돌보게 되었는지 소설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안타까운 건 후베르트는 중증 치매환자라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는 그저 7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가 언제 오는지 그것만 기다리는 86세의 할아버지인데, 린다가 그를 대하는 방식이 별나기에 소설을 읽는 맛이 난다. 생각해 보라. 죽음을 앞두고 자기가 죽는지 그 조차도 잊어버리는 치매환자를 대하는 린다의 태도. 그건 섬세하면서도 장난 같아서 소설을 읽을 때 젊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어린 소녀 린다인데 말이다. 그건 작가의 직업이 뭐였는지 알게 되면 이해가 된다. 그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많은 환자들과 그중엔 죽어가는 환자까지 접했을 테니 말이다.


소설에서 후베르트와 에바와의 관계에 대해 린다가 스스로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서로를 느낀다고. 서로 파고들거나 서로 다가가는 물결이거나. 그러다 보면 서로 감정과 분위기와 몸짓이 쌓인다고. 그런 관계라고. 이걸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치매에 걸려 고통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간 후베르트와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음으로 맞이한 후 아직 그가 남긴 편지도 읽어보지 않은 소녀인 린다가 속삭였을 말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한, 우리는 서로에게 신비로운 존재가 된다"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렇다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작고 약한 존재들이 마침내 서로에게 희망이 되기까지" 우리 사회가 쉽게 여기까지 다다를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린다가 매번 같은 요일에 후베르트를 만나면서 어떻게든 가장 행복했을 한때 그의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을 통해, 그녀가 점차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발견해 나간다는 점이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소녀가 비로소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과정. 오로지 자기가 일하는 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수영장 안전요원 출신인 노인과 어릴 때 불행한 몇몇 사건으로 인해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소녀가 서로 만나면서 나누는 관계. 이걸 계기로 린다가 성장하는 것 같은데, 치매에 걸려 죽어가는 노인이 끝나가는 자기 삶조차도 기억을 잃어버리니 이건 오히려 행복한 걸까?


그러니 내내 든 생각은, 성장의 반대말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일 것 같다는 확신이 점차 커졌다. 성장하기 위해선 많은 망각이 수반된다는 걸 우린 알지 않던가. 지금까지 살면서 기쁨이 슬픔보다 더 많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많은 걸 잊음으로써 지금까지 살아왔을 테니까. 여기까지 우리가 올 수 있었던 건 슬픔이건, 좌절이건, 굴욕이건, 아픔이건, 받은 상처 건, 많은 걸 잊었기에 가능했을 테니. 치매환자가 기억을 구분해서 잃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기억 속에 기쁜 일만 남게 할 수 없으니 빨리 망각하는 법을 배워서 그 자리를 행복으로 채워야 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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