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스페인.

by 길문

인생이란 여정은 내가 원해서 시작된 건 아니지만, 여행이란 여정은 그걸 시작하고 끝맺는 건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따른 거라도, 트래킹을 끝낸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이상할까? 빌바오 공항으로 가는 일행과 빌바오 시내로 들어가는 일행으로 차를 나눠 타면서 서로 인사를 할 때 뭔가 가슴이 허전했다. 그사이 정이 들었나? 누군 영국으로 돌아가고 누군 빌바오에서 며칠 더 머물고, 한국에 온 적이 있는 제이미는 바르셀로나 근처 섬으로 놀러 간다고 했었는데. 나 또한 이태리 로마로 가는 일정이 남아 있으니, 이제 팀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어제저녁에 만찬을 함께 했기 때문인지, 오늘이 마지막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침식사 후 바로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숙소가 있던 에스피나마 마을 모습.

스페인을 떠난다. 이 말인즉, 〈아스따 루에고, 스페인〉으로 시작한 연재가 끝난다는 말이다. 쓰다 보니 지금까지 스무 번을 연재했다. 이번 걸 합치면 총 스물한 번 연재를 한 것인데,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해서 쓴 것 아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중에 돌아와서 글을 쓰겠다는 것까지만 생각을 했었다. 그랬더니 어느덧 스무 번까지 이른 것이고, 거기서 멈추려다 마침표까지는 찍어야 할 것 같아 〈아디오스, 스페인〉을 쓰고 있다. 로마로의 여행이 남아 있지만, 로마는 스페인 땅이 아니라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젠가 스페인에 다시 올 것 같긴 한데,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는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이 될지,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떠나는 산티아고 해안 길에서 자전거를 탈지 아무것도 정한 것 없다.

마지막 머문 호스텔 앞에서 망중한!

트레킹을 끝내고 로마로 갈 때 비행기 시간을 오후 1시 30분으로 잡은 건 빌바오를 거쳐 마드리를 지나 로마에 도착할 때 너무 늦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음 비행기는 오후 5시경에 있어서 그걸 타면 한밤중에 로마에 도착해야 했다. 숙소가 떼르미니 역 근처라 늦은 밤에 얼쩡거리는 것이 좋지 않으니까. 우범지대로 알려진 역 근처를 혼자 밤늦게 걸어야 한다고? 여행 중 값싼 리스크는 당연히 피해야 한다. 스페인 여행을 끝내고 로마를 거쳐 귀국하려는 목적은 가톨릭 희년 행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5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그 행사를 위해 2024년 한 해 로마 시내 곳곳이 공사판으로 변했었다. 심지어 성 베드로 성당의 그 유명한 피에타와 발타키노까지도 가림막으로 막아놓고 보수를 했으니. 미련을 없애야 해서 이번 기회가 잘 됐다 싶었다.

빌바오 공항을 가다 들른 주유소.

25년 이후 미래를 누가 예측할까? 내가 세상에 없을 수도. 아무튼, 축제 같은 세계적인 행사가 로마에서 열리니 스페인에서 귀국할 때 잠깐 들러보기로 한 건 아주 쉬운 결정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치안이 불안한 테르미니 역과 시내 밤거리에 대한 염려는 기우였다. 로마에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들기에 소매치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대목을 맞이한 건데, 이런 예상은 로마라고 하지 못했을까? 세계적인 행사에 세계적인 로마가 명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한 것 같다. 그건 어떻게? 로마 시내에 경찰과 군인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심지어 지하철역에도 무장 경찰들이 있었다. 소매치기로 오명이 자자한 그 로마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건 정말 작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빌바오 공항. 내가 탈 게이트는 1층에 있었다.

그건 그렇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이 늦으면 빌바오 공항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비행기를 놓칠 수 있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가이드 카를로스와 상의를 했더니 아주 쉽게 답이 만들어졌다. 일찍 출발하기. 오전 8시 30분에 택시를 타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숙소에서 3시간 걸려 공항에 도착한다고 하니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아침을 먹고 숙소에서 노닥거리느니 어차피 떠날 텐데 일찍 떠나자, 뭐 이렇게 다른 일행들에게 전달된 것 같았기에 누구도 일찍 떠나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불안했던 건 마드리드공항에서 빌바오 공항으로 떠날 때 벌어졌던 해프닝 때문이었다(15화 참조).

로마로 가는 게이트 H6.

그렇게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올 때와 다른 길이라서, 설령 같은 길이라도 졸고 싶은 마음 없었다. 옆에 아리따운 호주 아가씨 세라와 같이 앞 좌석에 탔으니까. 그녀도 그날 부엘링 항공을 타고 런던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그녀도 영국인인 줄 알았었다. 원래 집은 호주 브리즈번에 있고, 지금은 런던에 머물고 있다는. 직업은 어린이 심리치료사라고 했었는데, 살면서 트레킹을 이번에 처음 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여권이 두 개라는 것. 여권 부자라고 놀렸는데, 그녀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선 영국 여권을 사용했다고 해서 알게 된 것이다. 인구가 많지 않고 제조업이 덜 발달한 뉴질랜드에선 호주로, 호주에서는 영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많이 떠난다는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들 국가의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높다는 사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입국장.

부엘링 항공을 이용해 대부분의 일행이 런던으로 가는 거라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난 바로 그들과 헤어졌다. 차에서 내려 그들과 헤어질 때 짧게나마 허깅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난 바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배낭 하나 매고 온 나라서 수화물을 부칠 필요가 없으니 대기시간이 필요 없어 좋았다. 여기에 온라인으로 체크인까지 마쳤으니, 검색대에서 실시한 배낭 검사까지 일사천리였다. 그 후 전광판에 게이트 번호가 뜨길 기다리는데 호주에서 온 세라가 내 뒤를 따라왔다. 그녀도 가방이 가벼웠었다. 자연스럽게 공항 카페 Baker.St에서 마지막으로 카페 콘 레체를 마시는데, 허깅까지 하며 헤어졌던 런던행 일행을 다시 만났다. 하하!

성 베드로 성당 광장 순례자들.

공항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그때까지 몰랐었다. 공항에 카페가 한 곳 밖에 없었으니, 다시 그들과 해후를 한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빌바오에 올 때 에어 유로파가 연착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한 게 남아, 비행기 운항이 혹시 연기되거나 취소될까 조바심으로 전광판을 보다 보니 오후 1시를 넘겨 게이트 번호가 떴다. 이제 정말 일주일 동안 함께 한 일행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그랬기에 time to say good bye again라고 했더니 키 큰 크리스가 방긋 웃는다. 취미로 스쿠버 다이빙까지 하기에 얼마 전 필리핀 보홀에 갔다 왔다는 아주 건장한 청년. 런던에 도착한 뒤 일주일 후 케냐에 출장 간다고 자랑스럽게 말한 그는 외교관이다. 한국에도 온다는데 그때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성밖 바오로 대성전 옆 대기 중인 경찰과 순찰차. 옆에 군용 차량까지.

다시 헤어지려니 방을 두 번이나 같이 쓴 롤란드가 허깅을 하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뚱뚱한 크리스 형님까지도 허깅을 했으니. 아마도 다시 보지 못할 거라서 나눈 포옹이라고 이해했다. 남자들끼리 나눈 찐한 허깅이라니. 그 후 일행과 헤어져 게이트를 찾다 잠시 당황했다. 내가 가야 할 게이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더 헤매다 보니 통상 있는 게이트 위치가 3층이 아니라 1층이었다. 이건 게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고 활주로까지 가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마드리드까지 가는 비행기 BH1100편, 그 후 마드리드 공항 4 터미널에서 내려 게이트 H6를 통해 IB0653를 타고 로마로 향했다. 다시 혼자가 됐다. 인천에서 바르셀로나로 들어올 때 혼자였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살다 보면 반드시 기쁜 일만 일어나지 않듯이 여행도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인간이란 동물이 언제 완벽하던가? 나도 누군가를 싫어하듯이 나랑 피부와 인종과 국가가 다른 누군가도 자기와 다른 누군가를 싫어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걸 여행이라고 받아들이면 다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간혹 분노가 치밀어도, 그건 여정을 통해 헤쳐나가야 하는 거라서. 이번 여행 중 유이하게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악다구니로 싸울 수도 있으나, 난 외지인이기에 손해는 내가 더 입는다. 무시하는 거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끝. 바르셀로나에 있는 햄버거 가게 파이브가이즈에서의 불쾌한 경험과 마드리드 4 터미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젊은 스페인 남자가 내게 H6 게이트를 반대로 가르쳐 준 일. 그들은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로마 공항에서의 이런 낭만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다 지난 일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저 웃음이 나온다. 만약에 다음에 또 그런 일을 당하면 그때도 씩 하고 웃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런 흠들이 결코 내 여행에 어떤 상처도 되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난 일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쓴다는 것이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으나, 어차피 글이란 건 기록함으로써 기억하려고 하는 작업 아니던가. 그러니 크게 현재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인터넷에 글과 사진을 함께 올려야 하니 지난날 흔적을 챙겨보는 건 즐거운 일 같다. 추억을 어떻게든 남기려는 내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기에 다음에도 기회를 만들어 또 떠날 것 같다. 그곳이 어디든. 이건 시간을 멈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Gracias por leer mi escr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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