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켈러(2023).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돌베개.
철학소설이라고 하기엔 책을 읽는 대상이 아이들이라서 딱히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그저 아동 도서라고 하기엔 심오해서 난감했다. 이건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그랬는데, 이건 내가 너무 늙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눈을 어린이에 맞춰 생각을 하면 쉽게 이해했을 것 같은. 자꾸 따지는 습속이 몸에 밴 어른이기에. 암튼, 이걸 장르로 구분하면 성장소설 내지 판타지 소설 같은데 전자로 하면 이걸 읽는 나는 틀림없이 성장이 덜된, 미숙한 어른인 것 같아 씁쓸했다. 인정할 것 인정하자고!
릴리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할머니가 호랑이로부터 훔쳐 간 이야기 단지를 돌려줘도 할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슬퍼야 하는데,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아 퍼즐을 맞추듯 몇 가지 복기를 했다. 할머니가 호랑이로부터 이야기 단지를 훔친다는 설정 자체가 이해가 안 되니 난 어린 시절을 까먹은 어른이었던 것이고, 이걸 제대로 이해를 해야 소설을 이해할 수 있으니. 할머니가 호랑이에게 이야기 단지를 훔쳤다는 의미를 알아야 했다.
먼저 이야기 단지에 뭐가 있을까? 결국 세상을 살아나가는 건 항상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지만 않다는 걸 말하는데, 그건 이야기 단지 속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을 슬프고, 무섭고, 위험한 진실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사랑하는 자기 딸과 손녀들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서. 그러니 그런 나쁜 이야기들을 숨기면, 그건 불행을 잉태하는 씨앗이기에, 그걸 모르면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었으니, 할머니는 그걸 훔친 것이다. 더해서,
소설을 읽을 때 나쁜 이야기가 담긴 단지라는 게 말이 될까 했던 건 어디까지나 편협하게 살아온 어른이었으니, 이걸 어린 릴리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나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것이다. 이걸 어떻게든 퍼즐이랍시고 맞추면 우리가 살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 살면서 우리가 직면한 아픔, 고통, 상실, 죽음 등을 상징한다는 걸 나중에 이해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쁜 이야기를 훔친 것을 넘어 세상에는 좋은 면만 있을 수가 없기에 호랑이를 등장시킨 거라서,
호랑이란 결국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이야기들의 주인이기에 이것들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존재라고 이해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겪는 이런 것들을 피한다고, 감춘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오히려 이를 드러내고 같이 공유해서 함께 치유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 이건 다 큰 어른들이 아니라 한참 성장해야 할 어린이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었을까? 결국, 릴리와 언니 샘, 그리고 엄마가 같이 노력을 해도 치매로 고생해 왔던 할머니는 뇌종양으로 죽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가족이 슬픔을 겪지 않도록 애쓴 할머니의 노력과 바람이 쓸데없는 일이었을까?
릴리는 엄마와 언니 샘과 함께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워싱턴주 선시티로 이사를 한다. 이때 릴리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속에 등장할 것 같은 호랑이를 보게 된다. 이때 호랑이는 옛날에 할머니가 훔쳐 간 '이야기들'을 돌려주면 할머니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수줍고 소극적으로 세상에 투명 인간처럼 살아온 릴리는 호랑이를 가둘 덫을 만들고 거래에 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릴리는 할머니가 항아리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할머니의 과거와 한국 여성들이 살면서 겪은 고통, 그리고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때, 릴리는 죽음이란 걸 그 어떤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을 알게되지만, 이야기들을 통해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슬픔 또한 받아들이면서 깨닫게 된다. 가족의 사랑뿐만 아니라 언니 샘도 자기처럼 그랬다는. 그걸 극복해서 당찬 소녀로 성장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