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2018). 체공녀 강주룡. 한겨레출판.
을밀대의 체공녀! 여류 투사 강주룡 회견기?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최초로 벌어진 고공농성이었다고? 무슨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 너 소설 읽고 있는데? 그렇군. 난 소설을 읽은 거다. 그런데 소설이 아니다? 책 말미에 있는 월간지 『동광』 1931년 7월 호(제23호)에 나온 사진을 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면 과장일까? 누구에게도 감정이 쉽게 이입되지 않는 요즘, 겨울 날씨같이 차가운 하루하루를 보내다 뭉클해진 가슴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1931년 5월 31일 동아일보 등 일간신문에서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사와 사진이 먼저 실렸고, 그 후 〈체공녀〉란 이름을 붙여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킨 건 잡지 《동광》이다. 우리에게 〈불놀이〉로 알려진 시인 주요한 그가 1926년에 창간한 잡지 《동광》에 강주룡이 실린 것이다. 서간도에 평양에 을밀대에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에 중국 경찰에 일본 경찰에 악덕 기업주에 등등 이런 시간 여행이라면 언제든 즐겁게 즐길 수 있는데, 사진을 보다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고공농성과 파업 주동자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곧게 쳐들고 임금 삭감 철회하라, 노동탄압 중지하라고 구호를 외쳐야 하는데 말이다.
힘들어서였을까? 조선인 사장 밑에서 일하면서 파업하는데 일본 경찰이 와서 쫓아내니 그런 것일까? 을밀대 위에 저런(사진 참조)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디 노동투사의 이미지던가? 아련하다고 해야 할지. 연민이 마구마구 쏟아지는데, 배고파서 그런 것이라고 누가 농담이라도 했다간 그냥 주먹을 날릴 것 같은 심정은, 그가 정말 짧게 세상을 살다 떠났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를 기록에 남긴 잡지 《동광》처럼, 그를 발굴해 소설로 강주룡을 부활시킨 작가 박서련에게 한겨레 문학상이 닿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소설은 항일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세상을 살다 간 그를 다시 복원해 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득한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에 더해서 여성노동운동이라니. 보태서 고공농성이라고? 이러니 대체 그가 누굴까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190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나고, 가난 때문에 가족이 모두 서간도 길림성으로 이주한 건 그의 나이 14살 때였다. 그렇게 그곳에서 7년을 보내고, 당시 15세 남편 최전빈을 만나 결혼을 했다. 여기까지 그렇고 그런 가정사지만, 무슨 생각인지 남편이 20살 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 시대정신이 그랬었나 보다. 항일독립운동 말이다. 그러니 남편을 따라간 그녀의 생활이 어땠을까?
남편의 권유로 홀로 본가로 돌아갔다 6개월 후 그는 남편이 위독해 달려가지만. 그런 그마저 남편을 살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남편을 보낸 그 시절 과부로서의 삶은 당연히 순탄하지 않았을 터. 젊은 남편을 먼저 보낸 죽일 년이었기에 중국 경찰에도 고발을 당한 후 무죄가 되었건만, 눈앞에 닥친 건 생존. 이건 먹고사는 문제 아니던가. 어떤 이념이나 고매한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 말이다. 그의 등에 올라탄 가난이 그로 하여금 1925년에 조선으로 귀국하게 만들고. 그렇게 그는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평원 고무공장 여공으로 시작된 노동자 생활에 1929년 불어닥친 세계적 대공황까지 덮쳤으니. 공장에선 임금 삭감과 감원이 일상이었을 테니.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난 거라고 해야 할까?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이기에 더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그는 1930년 평양고무직공조합에 가입하고 파업에 참여한다. 장기적으로 계속된 불황이란 여파가 지속된 와중에 그가 다닌 공장 조선인 사장이 임금 삭감 17%를 관철시키려고 하였고,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는데, 그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49명을 회사는 해고를 하였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새벽에 회사에 들어가 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게 쫓겨나고, 갈 곳 없어 이리저리 걷다 도착한 을밀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평양시민들에게 회사가 행한 부당한 노동 행위와 비참한 노동현실을 그곳 을밀대 위에서 고발했기에 조선 최초 고공농성자, 체공녀가 되었다.
그렇게 체공녀 강주룡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런 그는 회사가 1931년 6월 7일 임금 삭감을 취소하고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 절반을 복직시켰지만, 그 대상자에 들지 못한다. 만약 그가 복직되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더 나아가 6월 9일엔 적색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다시 경찰에 잡혀간 후 다음 해 1932년 6월 4일이 돼서야 병보석으로 출소한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룡은 평양 서성리 빈민굴에서 그동안 얻은 병으로 인해 세상을 등진다. 여기까지 역사가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니 삶 자체가 소설인가?
소설을 읽고 자료를 뒤져보니 내가 읽은 것이 소설인지 역사인지 잠시 헷갈렸다. 소설 속 허구라고 기록될 그런 부분들이 어느 순간 생생한 사실로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 든 건 바로 사진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설과 역사가 만났을 때 그 경계를 구분해서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생전에 가볼 일이 전혀 없을 평양이란 도시와 그곳에 있다는 을밀대가 주는 아득함 보다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건지 쭈그리고 앉은 그녀 모습이 어찌 투사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생각이 엉켜버린 것이다.
더해서 소설 말미에 그를 적색 노동조합으로 이끈 동지 달현이 나와 을밀대에 올라 고함을 외치는 강주룡을 상상하면서 내뱉는 장면은 필히 소설이지만. 평범한 강주룡이란 여성이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고난을 이겨냈는지를 넘어서서 을밀대에 다시는 올라가지 말라고, 그곳에 올라가면 죽는다고 말하는 달현에게 주룡이 답하는 대화. 알고 있다고, 을밀대에 다시 올라가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이러니 잠깐 소설이 역사를 넘어선 것도 같은데 여전히, 그 경계 어딘가에서 들리는 목소리. 사람의 목소리.
소설과 역사 그 경계에 사람이 있었다. 소설 마지막 문장처럼.
"저기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