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집 같은데 한 곳은 제천시이고 다른 곳은 단양군이다. 그럼 옛날에는? 한쪽을 여성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고 그럼 구담봉은 남성? 뭐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옥순봉은 옥순봉이고 구담봉은 구담봉이다. 너무도 자명한 사실인데, 이게 헷갈리는 이유는 두 곳을 가다 보면 그냥 세트로 같이 가야만 하는 곳처럼 생각된다. 실제로 길이 같다. 갈림길까지 그렇다는 건데 둘 중에 하나만 가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이게 이상할 정도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길을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남들은 어디를 먼저 갈까? 별 중요하지도 않을 질문이지만 난 오른쪽으로 먼저 갔다.
오른쪽이 표기상 600m이다. 좀 더 가까워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고. 좀 더 힘들 것 같아서이다. 초장에 에너지를 쓰는 게 땀을 확 빼면 걷기 더 좋아서 일 것도 같았고. 옥순봉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해서 뭔가 처음부터 밑진 장사하고 싶지도 않기도 하고.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맞지만. 결론은 그냥 갔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게 이쪽 간다고 무슨 혜택이 있을 리 만무하고. 다시 갈림길까지 돌아와야 하거늘. 결국, 내 품을 팔아야만 두 곳을 다 볼 수 있는데. 어딜 먼저 가든. 아, 확실한 것은 보이는 조망이 다르다. 그래서 둘 다 가야 한다.
지금이야 충주댐이 만들어져서 장회나루에서 유람선 타고 유유 작작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어땠을까? 뭐 옛날에도 남한강 줄기였으니 배 타고 돌아봤으리라. 단, 양반이었으면 그저 편안히 시나 읊으며 술 한잔했을 테지만. 이런 상상을 떠나서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그저 내려다보는 풍광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럼 올려다보는 풍경은 어땠을까? 다음엔 꼭 장회나루에서 유람선 꼭 타보련다. 유람선 타고 청풍호도 가보고 충주시도 가보고. 이런 아쉬움은 사실 근거가 있다. 이 봉우리가 구담봉이기 이전에 이곳 바위가 물에 비친 모습이 거북 무늬라나?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먼 곳에서 보면 남한강 옆 깎아지른 기암절벽 위 바위가 뭍으로 올라가는 거북이 모양이라나? 그래서 구봉이면서 담봉이 된 것이다. 구담봉(龜潭峰) 말이다. 맞은편 가은산 둥지봉에서 보면 그 모습이 어떨까? 담에 봐야지. 꼭.
어디서 얼핏 사진을 봤는데 구담봉 가는 길이 온통 계단이다. 우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먼저 가길 잘했다는 것은 갈림길에서 걸음을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조망이 뻥하고 열린다. 뭐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거북이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이 시원해서 좋았다. 저 멀리 제비봉도 보이고. 그런데 발아래를 조심해야 한다. 가는 길이야 거의 돌길이지만 정작 조심해야 할 곳은 계단.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이럴리야 없겠지만 주변 경치는 아마도 그곳 아닐까 한다. 그저 조심조심 한걸음 걷고 눈을 들어 한 눈길 쳐다보고. 내려가는 계단이야 뭐 힘들겠냐마는 이는 곳 다시 오를 계단을 의미하니. 방심은 금물이지만 한편에서는 이 느낌 정말 좋다.
심장에서 뛰는 박동수가 그저 들리는 듯하다. 헉헉거리는 소리를 듣는 내 호흡을 듣는 맛으로 등산을 하는 것은 아닐는지. 바위 사이사이 놓인 계단을 걷다 보면 어느새 구담봉 정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게 정상? 옆에 탐방로가 없다는 표지가 보이던데. 그곳이 더 높아 높이고 아래 조망이 더 좋아 보이련만. 참아야 한다. 괜히 국립공단에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표지를 세워놨을까? 좋은 경치보다 정말 세상 먼저 뜨면... 아찔하다. 어느 국립공원에선 비 탐방구간으로 들어갔다가 두 사람이 세상에서 먼저 사라졌다는데. 아무리 경치가 좋거늘 이건 아니다. 아쉬운 것은 그저 사방 360도 터진 조망이 아니라는 것뿐.
구담봉을 얘기하다 보면 필시 옥순봉을 말하게 되는데, 이들 봉우리들을 포함해서 멀리 월악산과 제비봉까지 합치면 가히 충주호 관광의 백미가 될 것 같다. 그럼 옥순봉(玉筍峰)은 무슨 뜻일까? 한자 그대로 하얀 빛깔의 바위들이 죽순처럼 솟아있어서 그런 것이라는데 이 또한 물에서 보면 어떨까? 구담봉까지 빨빨거리고 걸었더니 땀이 뻘뻘거리고 난다. 제대로 걸은 것 같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싶다.
정말, 짧은 순간에 땀을 쫙 흘리고 싶었다. 그렇게 흘린 땀이 식기 전에 부지런히 옥순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까지 다시 왔다. 그래서 시작된 옥순봉 가는 길. 그렇지. 예상대로 내려간다. 전체 길이야 900m 라지만 이렇게 내려가면 또 올라갈 텐데. 다행인 것은 그리 높낮이가 깊지 않다. 그저 올라갈만하다. 이미 몸은 풀린 터라 기분이 좋다.
그래서 도착한 옥순봉. 이 봉우리가 허락하는 시야가 구담봉과는 다르다. 뭐,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이쪽에서는 옥순대교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출렁다리도 보이고. 그런데 옥순봉 전망대는 두 군데다. 아마도 옛날에 말하던 옥순봉은 지금 표지석이 있는 자리일 것이다. 그래야 이곳에서 10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고 했으니 필히 이곳이 맞을 것이다. 그럼 다른 곳은? 새로 만든 것 같은 전망대는 100m 정도 더 가는데 뭐 두 곳 다 좋다. 보이는 경치가 거기가 거기지만. 조선 초기 퇴계 이황이 단양 군수였을 때 이 근처 어딘가 돌벽에 '단구 동문(丹丘東門)'이라 새긴 후 이곳이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곳이 여기일 리야 없고. 아마, 저 아래 바위들이 시작되는 어딘가? 유람선을 탔으면 설명을 들었을까? 그리고 좀 생각해 보고 싶은 게 남한강을 막아서 충주댐을 만든 것이니 옛날 이곳의 물 흐름과 풍경이 약간 달랐을 것 같다.
댐 건설로 인해 수량이 높아져 일부 바위가 잠겼다고 하던데 생각해 보니 옛날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더 운치가 있었으리라. 무슨 근거로? 위 그림은 네이버에서 나오는 그림파일을 가져왔다. 설명에 따르면 단원 김홍도가 52세 되던 1796년에 그린 병진년 화첩의 일부란다. 1796년이 병진년인지는 모르겠으나. 옥순봉이 어떻게 보였을까가 확연히 드러난다. 대나무처럼 우뚝 솟은 봉우리들. 그때도 지금 느끼는 이 '느낌' 비슷하게 느꼈을 것 같은데, 그 느낌이 뭐냐고? 지금 사진으로 보는 김홍도의 그림 풍경과 옥순봉에서 내려다보였던 풍경이 당연히 다르지만 누구든 이곳에 와서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니면 밑에서 내
올려다보았을 그 '느낌'은 같았을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말이다. 그런데 김홍도는 옥순봉 위에 올라와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