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다자이 오사무(2021). 인간 실격. 코너스톤.
넌 실격이야!
누가 정했는데? 그것도 인간인데 실격이라니. 자격이 부족해서 실격인 것인지, 자격이 넘쳐서 실격인 것인지. 이때 자격을 누가 정할까? 자격의 내용은 뭐지? 인간이 인간임을 규정하는 게 뭘까?
뉴욕 타임스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라고 평했던데, 그럼 실격의 기준이 나약함! 유약함? 인간으로서? 근데, 소설에선 아무래도 소설가다.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그 실격의 조건을 정했다.
그래서 자살했다. 진짜로! 그는 인간으로서 자기가 실격했다고 생각해서 자살한 것일까?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 도널드 트럼프가 생각났다. 미국의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그러고 보니, 도널드 덕도 연상된다. 이름 때문인데, 도널드. 그런데, 꽥꽥거리는 이미지가 똑같다. 디즈니가 그린 만화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원래는 미키마우스보다 덜 중요하게 묘사했는데, 나중에는 더 떴다고 한다.
그렇다고 도널드 트럼프가 도널드 덕같이 귀엽다고? 그냥 꽥꽥 거리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뿐. 혹여나, 트럼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길. 그래서 난 실격이다. 트럼프를 무시하다니! 그러면 그는 나한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넌, 해고야(You'are fired).
참고로 이 말은 미국 NBC 리얼리티 프로그램 수습생(Apprentice)에서 트럼프가 자주 써서 유행했는데, 원래 기원은 WWE(미국의 프로레슬링 단체)의 오너 빈스 맥맨이 자주 썼다고 한다. 누가 이 말을 썼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인간으로서 자격이 될지 안 될지 생각해 봤다.
난, 실격일까? 일본에서 일본인이 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한때 대통령 트럼프까지 인용하다니. 이 자체가 희극 같다. 누군 인간으로서 자격이 안돼 실격이라고 하고, 누군 절대 자기의 어설픔과 비정상(?)을 절대 실패라고 인정하지 않고. 그렇겠지. 앞으로도. 그럼, 뻔뻔한 자의 승리?
인간실격이란 단어뿐만 아니라 소설을 정치인 트럼프와 비교하다니! 이 작품 하나로 그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굳이 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의아스럽지만, 그냥 이 소설로 한정하자. 그래야 모른다고 면피도 되니. 그래서 난 실격이다. 그러니, 난 오사무 급?
고리대금업으로 부흥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일찍부터 마르크스에 심취해 좌익활동도 하고, 학교에서 1등 할 정도로 수재이면서도 문학활동을 통해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한 겉멋에 불문학으로 전공을 정하고, 제1회 아쿠타가와상에서는 차석을 차지했지만 제3회 수상에 실패하자 항의를 했다는 등. 이렇게 보면 그는 보통을 넘어선 사람인 것 같은데...
그가 미친 영향은 그냥 《인간실격》을 인터넷에서 쳐보면 번역본만 여러 권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사람이 번역을 했는데, 이 책이 중요하긴 했나 보다. 그렇다고 이 책 읽고 감동받았다고 썰을 풀자니, 뭘 감동받았는지 난감하다. 그렇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일본과 패전 후 일본 사회가 어땠는지 경험해 보지도 못했으니, 일본의 낭만파나 패전국 일본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허무주의에 빠졌다던가,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표현한 작품으로 일본 청년층의 정서적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던가, 그가 그래서 데카당스(퇴폐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라든가 등의 얘기는 이해는 하겠는데, 감동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랬을 것 정도. 이 책이 완성된 게 1948년이라고 하니, 일본 전후 세대가 느낀 전쟁에 대한 상처와 부조리가 무엇인지 느꼈다면, 그건 정말 뻥이다. 그냥 소설에서 주인공이 왜 사는지 해결하지 못한 채 떠도는, 그게 결국 작가 스스로 자기혐오에 빠지고 현실을 비관적으로 인식한 결과인데,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고 그러던데, 그랬었나? 이게 이 글을 읽고 난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이 지금까지 누적 부수 1000만 부 이상이고, 다자이 오사무로 하여금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는데, 꼭 이 책 때문은 아니지만, 모르겠다. 대단했었구나.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실제로도 이 작가는 무수히 많은 염문을 뿌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대상엔 남자는 없다. 알기론. 속물임을 부정하지 않으니 나도 뻔뻔하지만, 그 많은 여성들과 어떻게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당시, 예술가들은 그래야만 예술적 영감을 얻거나 그래야 인정받았었나? 시각을 바꾸면 그저 그런 수컷 이야기 같은데. 전후 패배와 인간 상흔에 대한 심각한 경험과 고민이 없으니, 누구 나 좀 말려주세요!
소설로 돌아와야겠다. 감히, 거장을 비판하다니. 소설은 누군지 모르나 '나'가 화자가 되어 서문과 후기를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요조가 세 개의 수기를 쓴다. 순수하게 태어난 건지, 태어나서부터 인간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요조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남을 웃기게 되는데, 이런 노력이 좌절됨으로 해서 술과 마약, 여자에 빠진다.
계속되는 자살시도가 진짜 자살시도가 되어 작가는 죽고. 책에서 살아남은 요조는 세상과 절연되어 외톨이로 살아남는데, 그래서 그는 인간으로서 실격되게 된다. 그건 작가 생각이고, 그래서 그는 진짜 실격하고 만다. 스스로 세상을 끊임으로써 소설을 입증하고, 이로 인해 그는 일본 문학의 거성으로 남는다. 누가 실격한 건지. 그래서 든 생각. 이 책을 현대 버전으로 한번 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