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흑역사, 아직도?

[책 여행] 콜슨 화이트헤드(2020). 니클의 소년들. 은행나무

by 길문

그럼 그렇지. 콜슨 화이트헤드는 흑인이다. 작가가 백인이었으면 이 책이 더 감동적이었을까? 작가가 흑인이라서 인종차별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걸까?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는 여성이지만 백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쓴 책은 시대가 흐르고 흘러도 감동을 선사할 것 같다.


인종 문제, 그것도 차별 문제는 미국 역사에서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낙인처럼 그들 차별의 역사에서 중심이었다. 이건 분명히 흑역사다. 흑역사라도 미국 역사. 이건 불변의 진리다. 역사에서 지운다고 지워질까?


어느 나라든지 흑역사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뭐가 있더라? 우리에게 외교적, 군사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영향을 엄청 미쳐온 미국이기에, 그 당시 그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린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아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게 흑역사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누가 드러내고 싶을까마는, 미국에서는 그래도 그것 또한 용인이 된다. 이 말인즉, 아직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왜냐고? 여전히 미국인들 중의 15% 내외는 흑인들이니까. 용인이 된 것도 무수히 많은 흑인이 희생했기 때문이지만.


텔레비전 영화 시리즈 《뿌리》가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흑백 인종 간의 차별을 본격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으로, 이름처럼 아름다운 나라(미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에 대해 알게 해준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 책을 쓴 알렉스 헤일리는 이 책으로 197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그 스스로 흑역사를 만들었다. 그가 쓴 책 《뿌리》가 표절로 드러났고, 그가 책에서 쓴 주인공의 가계도도 조작이라고 판명이 났다. 이런 망신살! 미국 흑역사의 하나인 인종차별을 다뤄 성공적인 작가가 된 알렉스 헤일리가 미국 출판계에서 흑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이러니다.


역시나 이 책을 쉽게 고르게 한 배경인 퓰리처상은 미국의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를 기리기 위해 1917년부터 수상자를 선정했다. 언론 분야에서는 보도, 사진, 비평 등 15개 부분에, 예술 분야는 픽션, 드라마, 음악 등 7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2020년 선정작인 《니클의 소년들》도 역시나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이건 아마도 퓰리처가 언론인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모든 수상작이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실에 기초한 소설이라서 더 파급력이 확장되는 것 같다는 정도. 왜냐고? 허구가 아니라, 진짜 있던 일이니까.


이 책을 읽기 전, 이미 콜슨 화이트헤드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가 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책 때문이다. 그 책을 읽은 배경도 2017년 그 책이 201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기 때문임도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그 책의 가치가 떨어질까? 《니클의 소년들》도 202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고 골랐지만, 역시나 그 사실이 이 책의 가치를 결코 떨어뜨리지 못했다.


이 책을 자주 가는 중고서점에서 수상작들끼리 따로 모아놓은 코너에서 손쉽게, 고민 없이 선택했다고 해서 역시 화이트헤드야 하는 감탄이 결코 줄어들 이유는 없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작가 사진을 처음 본듯한 느낌, 그리고 작가가 잘생겼다는 생각 정도만 달랐던 것 같은데, 이 또한 이게 맞는 기억인 줄 잘 모르겠다. 예전에도 작가 얼굴을 확인했던 것 같은데... 아주 잘생긴 흑인!


엘우드로 불리는 총명하고 착한 흑인 학생이 어느 날 히치하이킹을 하다 차량 도둑으로 몰려 니클의 소년이 된다. 플로리다 마리아나에 있던 도지어 남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학대와 차별. 이 남학교를 소년원이나 감화원으로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 어린 친구들을 가둬두고 일정 시간 교육 후 사회로 복귀시키는 프로그램. 이곳에서 많은 흑인 소년들이 구타나 학대 등으로 사망하고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 같은 학교 내에서도 흑백 간의 인종차별이 존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알게 되는 짐크로 법(1867~1905).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좌절과 절망을 겪지만, 그게 절대적으로 작동된다면? 나 자신이 엘우드처럼 착하고 총명하지 않더라도, 인생이 이렇게 흐른다면, 어쩌면 스스로 폭발할 것도 같은데, 이 작은 주인공은 니클을 바꾸기로 생각을 바꾼다. 그건 그곳을 없애는 것이다. 어떻게?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그 방법은 학교의 실태를 낱낱이 학교를 방문한 감사관들에게 폭로를 하는 것이다. 똑똑한 학생이란 전제로 그곳에서 벌어진 내용을 정리해서 그들 감사관들에게 전달은 하지만, 전달이 돼서 바뀌었다면, 소설이 될 수 없으니.


결국, 엘우드는 처벌을 받게 되고. 마지막, 예상된 죽음을 앞두고 친구 터너의 도움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연극의 암전처럼 시각은 성인이 된 엘우드로 바뀐다. 그사이 시간이 흐르고 인종차별은 여전하나, 과거 니클에서 벌어진 만행도 사회에 드러난다. 엘우드의 노력이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엘우드가 실제는 터너였다는 것. 터너가 엘우드의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다.


많은 희생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리를 넘어서, 소년 엘우드가 니클을 바꾸는 희망 그 자체가 작가가 받아들인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사상이지만, 엘우드는 현재 없다. 현실에서도 많은 엘우드가 나타나서 세상을 바꿔 그나마 인종차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이 많은 흑인들이 사라진 뒤였다.


이건 과거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마,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퓰리처상으로 기억된다면, 그래서 이 책이 남다르다. 상이란 권위로 미국의 흑역사를 기억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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