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버지가 보고 싶다.

[책 여행] 미셀 자우너(2022). H 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by 길문

'아딸'하면? 떡볶이가 생각난다! 알아보니, 정확히는 아빠는 튀김. 딸은 떡볶이를 파는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아딸이다. 마치, 초등학생한테 물었을 때 나올만한 답이다. 떡볶이와 튀김. 그렇군. 떡볶이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의미할 것도 같다.


그럼, 엄마와 딸인 엄딸은? 이 책을 잘못 읽었는지 떡볶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도, 이를 모녀가 먹었다는 내용이 없다. 작가 미셀 자우너와 엄마를 연결하는 끈인 음식에 떡볶이는 없다. 아쉽냐고?


아딸과 엄딸을 굳이 대칭으로 놓으니, 뭔가 비교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젠가 딸이 아버지와의 애틋한 관계를 상징하는 에세이를 누가 써줬으면 좋겠다. 딸이 아니라서 애초 불가능하지만,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글을 써도 이 정도 정서적 유대감을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가 남자라면? 이리저리 생각해도,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이렇게 될 것 같지 않다. 혹시, 아버지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 할 얘기가 많아도 이 책처럼 표현이 될까? 작가는 음식과 음식을 파는 마트를 통해 엄마와의 유대를 기억했는데, 남자들이면 딱지치기, 말타기, 무등 타기 등 다른 뭔가가 매개될까?


음식. 필수적이다. 먹어야 산다. 그것도 잘 먹으면 더 좋다. 옷도 아니고 집도 아니니,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요리를 준비하러 H 마트에 갈 때마다 더 엄마가 생각났겠지. 그래서 눈물. 음식을 직접 만들면서 다시 눈물. 그리운 엄마, 보고 싶은 엄마,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럼, 남자는 어떨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까? 정말, 다행이다. 아직, 이걸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그럼, 엄마는? 남자인 나도 엄마가 더 애틋할 것 같다. 이건 비밀이다. 아버지한테.


낳은 정, 기른 정, 미운 정, 여기에 부정 등이 있지만, 대부분 정이 엄마와 관련된다.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될 수 있으니, 어쩜 엄마는 포유류인 인간의 근본 같다. 엄마라는 단어. 어떤 무명가수는 엄마라는 곡을 작곡해서 최종 우승을 했는데, 우승 소감 중 엄마를 팔았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 사람이 우승할 실력이 있는지를 떠나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엄마는 정말 뿌듯했으리라. 이 녀석이 날 정말 좋아했구나 하고 말이다. 그게 100% 진실이 아니었어도, 엄마는 다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기 자식이니까. 그래서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나 보다. 남자든 여자든. 어릴 때. 지금은?


주변에 힘든 일이나 놀랄 때 여성 대부분은 엄마하고 소리를 지른다. 우리 누나도 그랬다. 밤에 깜짝 놀라면 '엄마'라고 한다. 아빠라고 하면 아버지가 좋아하셨을 텐데, 나이 들어도 그럴까? 좀 달라지겠지? 남편 이름을 부른다던가, 아들 이름을 부른다던가. 그런데, 남자는? 아버지 할까? 우린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을 그들이 없을 때나,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는 것 같다. 힘들고 지쳐 스트레스가 극에 넘칠 때 대부분이 가족을 대상으로 풀지 않던가. 사회생활하면서 그러면 그 사람은 왕따가 되거나,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할 것 같다. 좋은 점 싫은 점 다 있어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그 '가족'이란 단어.


이 책은 "우리 엄마만 왜 이래?"라는 반항심이 '우리 엄마니까 그랬어'라고 결론으로 맺어진다. 한참 성장하면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을 때 엄마도 당연히 그 대상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다들 클 텐데, 그런 그녀가 그걸 깨닫는 게 25살 때이다. 이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누구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작가가 어릴 때 이민 간,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가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그 정체성을 부정당하면서 성장한 여성이다. 그럼에도 지금 보면 아주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게 다 돌아가셔도 이 딸을 지켜본 그녀의 엄마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기대를 벗어나서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고, 그러다 딸이란 사명감에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를 보살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음을 깨닫지만, 그로 인해 켜켜이 쌓인 상실과 고통이 어느 날 한인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서, 승화가 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되새기며. 익숙하지 않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시간이 가면서 음식이 맛이 들듯이, 엄마가 남기고 간 사랑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작가는 스스로 위로를 받으며, 정체성까지 성숙하게 받아들인다.


다행히 어릴 때부터 자주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기반과 한국의 친척들로 인해, 미국에서 소외받고 컸던 다른 혼혈인들보다 조금 나은 생활 일지라도, 읽다 보면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가 내 피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은 미국에서 먼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까. 사회와 문화가 달라도, 그것도 미국에서 먼저 읽히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엄마와 딸이라는, 절대적인, 그러면서 아주 흔하지만 보편적인 그 관계가 비단 한국인을 넘어서 미국에서도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피부색과 문화가 달라도 그 보편적인 정서가 어찌 다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 아버지와 아들은 뭔가 다른 것 같다. 비교해 보면 밋밋한데, 모르겠다. 언젠가 남자들끼리 느낄 연대와 우애의 감정을 누군가 어떻게 표현할지. 엄마 가장이란 말도 있지만, 보통 가장은 남자들이 짊어온 몫이라서, 아들과 아버지가 벌이는 그 경계 어딘가도 엄마와 딸의 그 경계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건 언제가 닥칠 아버지의 부재 때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리 슬픔을 바가지로 퍼 맞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든 언젠가 겪을 상실의 고통을 어떻게 겪고 이겨 나가야 하는지 지침을 알려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부재할 수밖에 없을 때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하나의 모범 답안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만국에 공통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꼭 음식이 아니라도.


에세이가 이렇게 섬세하게 엄마와의 관계와 감정을 묘사할 수 있는지 새삼 놀랐다. 이건 전적으로 번역자의 공 같다. 스스로도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그래서 느낀 그 감정을 번역으로 표현한 역량도. 번역자가 스스로 한국인이기에 느낀 정체성과 미국에서의 생활이 좀 더 생생하게 번역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작가가 어찌나 섬세하게 표현했는지 보면 이 작가도 보통이 아니다. 그 소소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드러낼 수 있다니. 더불어, 작가 몸속에 한국인 피가 섞여서 인지 마치 아는 사람 얘기처럼 읽힌다.


그런데, 노래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유튜브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란 그룹의 리더 겸 싱어송라이터. 목소리만 들으면 아니지. 목소리 때문이라도 작가의 섬세한 감정이 소설뿐만 아니라 노래에서도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에세이 뒷장에서 서서히 성공해가는 밴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은 그 이상 성공한 밴드로 정착한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성숙해진 그녀 때문일 것이다. 생각한 것보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냘파서 놀라기는 했는데, 노래 또한 좋았다.


그녀가 쓴 책도 좋고, 그녀가 부른 노래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녀가 "아직 뭐든 할 수 있을 때 우리가 함께 있는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고 알려줘서 더 좋았다. 죽음 이후를 논하기보다 뭐든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과 누군가의 존재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집에 빨리 가고 싶다. 아버지 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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