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이 가능하다고?

[책 여행] 정유정(2021). 완전한 행복. 은행나무

by 길문

다행이다. 이 소설 내용이 소설이라서 다행이다. 소설을 소설이라서 다행이라고 하다니. 어디까지나 소설은 소설인데. 그래서 궁금했다. 작가는 이 소설 플롯을 어떻게 짜고 글을 썼을까? 이게 소설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질문을 뻔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소설인 줄 알면서 소설이길 바랐던 이유는, 최근에 40대 가장이 세 모자를 살해한 사건이 사회면에서 떠들썩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이건, 소설이 아니었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전승시켜오는 사피엔스는 그런 종이었다. 피부가 다르다고, 종교가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자기들의 이해를 교묘하게 수사로 표현해서 다른 인간을 죽이는, 정당성을 만들어 내는 종이다. 흠, 종이란 단어 때문에 정유정(2016)의 《종의 기원》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종의 기원은 일부 사이코패스가 만들어 내는 '악'에 대한 얘기였고. 이 책은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관한 책?


그녀는 이 책 작가의 말에서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p. 520)."라고 주장했던데, 그 말 전에 자아도취형 인간은 나르시시스트라 부르지만,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의미가 다르다고 말한다. 흠,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사이코패스는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를 말하는 것 같다(의사가 아니라서!).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하니, 모든 나르시시스트는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래야 말이 된다.


그럼, 자기 가족을 살해한 그 사십 대는 사이코패스였을까? 그럼 그는 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자가 맞아야 한다. 정말, 그럴까? 그 사람이 소설가였다면, 그는 그가 그런 과정을 벌인 과정을 소설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엄청난 소설이 될 것이다. 현실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비극을 자기 스스로 소설로 썼다면. 이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없어야만 하는데... 소설이니까. 혹여나 소설에서는 이런 내용을 구현해 볼 수도 있겠다.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면 정말 비극이다. 비극은 비극인데, 이때 비극은 희극처럼 들린다. 인간이 원래 이런 종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희극이 될 것도 같다.

그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군! 아님 나도 나르시시스트? 나르시시스트인데 드러나지 않았다? 《종의 기원》에서는 악이 어떻게 발현되느냐를 썼던 것 같은데, 악이 사이코패스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어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작가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누군가 잠을 헌납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니까.


책 표지를 보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고 하던데, 이게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인 것 같다. 그래서 소설 제목이 《완전한 행복》이다. 제목이 이러니 소설 내용이 완전하면 말이 안 된다. 완전한 행복이 서술되면 소설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작가가 우리 인생에 완전한 행복이 있겠니, 라고 강하게 외치는 것 같지는 않다. 소설가니까. 아님, 소설은 주장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슬로건이고 그건 정치인들이 써먹는 거니까.


세상은 이런 거고, 행복은 이런 거야라고 소설가는 소설이 말하는 서사로 증명하면 되니까. 그럼, 이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바가 뭘까? 나처럼 평범한 독자는 그걸 소설 내용에서 뽑아내기가 어려워 항상 써먹는 방법이 있다. 앞에서 벌써 이용했던 방법을 다시 써먹으면, 그건 작가가 뭘 말하는지 작가의 말에서 읽어내면 된다. 아주 쉽다. 읽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다 보면 또 드는 생각. 이 작가는 정말 자기 생각이 그러했고, 그런 자기 생각을 정말 그대로 소설에서 표현헌 걸까? 독자들은 그렇게 읽을까? 궁금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작가가 맞는 것 같다. 작가는 우리 인간이 유일무이한 존재일 수 있으나, 넌 특별한 존재임을 믿으면, 스스로 자기가 갖는 고유성을 넘어서 위험한 나르시시스트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지 말라고. 그런데, 왜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런 반발심도 생기지만. 사피엔스라는 종을 생각해 보면 작가가 주는 메시지가 이해가 된다. 그래서 작가가 한 말을 치환해 보고 싶다. "행복은 덧셈이다. 완전해질 때까지, 행복의 가능성을 늘려가는 거." 이게 가능할까? 그래서 작가 말이 맞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더불어, 작가가 말하는 게 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를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네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순간, 완벽한 행복을 꿈꾸게 될 테니까. 이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현실적이지 않으니까 하는 충고로 들린다. 내가 세상을 살아봤는데, 그런 게 아니고, 그러면 너 정말 불행해져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반발심이 몸안에서 용트림친다. 그럴리가?


행복. 정말 소중한 단어임에도 살다 보니,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완전한 게 가능할까라는 정도만 생각해도 대단할 듯하다. 갑자기 오늘 아침 선배가 보낸 톡 메시지가 생각난다. '얀테의 법칙.'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에서 내려오는 '보통 사람의 법칙.' 이게 왜 필요한데? 그것도 넌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지나치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라는. 그러면 너 행복질꺼야라고. 그게 정답이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정유정은 '완전한 행복'이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지만, "얀테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보통 사람임을 뼈져리게 느끼면, 그 자체가 높은 허들이지만, 완전한 행복에 도달할 것도 같다. 완전하게 행복을 느낀 후 어떻게 할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어쩜 이게 작가가 말하는 행복은 뺄샘이라고 들린다. 그럼 실천해 볼까? 첫 번째 단계는 아래 법칙들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실천하는 거다. 지금 당장. 그래서,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말해보자. 당신은 얼마나 행복해졌냐고!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아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네이버 지식백과] 얀테의 법칙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달려라, 하니도 아니고... 아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