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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Nov 11. 2022

보령 오서산, 바다가 손에 잡히는 곳.

"그녀는 보송보송 마른빨래를 걷는다. 반나절 만에 빨래를 말린 성급한 바람처럼 그녀의 팔십년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누군가 그녀의 세월 밖에서 그녀의 한 삶을 지켜보고 있다가 빨래를 걷듯 목숨줄을 휙 걷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것은." 정지아(2009).




아, 그랬다. 시간은. 그렇게 알 듯 모를 듯 알면서도 속수무책이다.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길 언제 왔었지? 성연주차장 쪽으로 올랐던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서해가 가까웠었나? 장땡을 잡았을 때가 이런 기분일까! 이렇게 바다가 가깝게 보이다니. 공주 쪽에서 오다 보면 그냥 높은 산이 하나 불쑥 솟은 듯한 모양. 반대편, 바다에서 보면 배 타는 사람들이 서해의 등대라고 여길 만도 하다. 진짜 배나 타 볼까? 


날씨가 가을 초입이라 낮에 더울 듯했는데 이런... 구름이 껴서 선선하다. 오늘은 행선지가 여러 곳이라서 가장 쉬운 코스로 결정했다. 빨리 갔다 내려오려고. 그래서 자연휴양림 코스로. 오호, 그런데 이게 탁월한 선택이다. 반대편에서 올랐으면 올라가면서 감이 잡히련만 여긴 짧은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그러다 중턱쯤에서 펼쳐지는 청양이나 홍성 쪽 풍경이라니. 그러다 조금 더 올라서면 정상이다.


억새가 보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큼 올라섰다. 그런데 아, 이 정상이 옛날과 맛이 전혀 다르다. 오르는 동안 시야가 막혀 예측하지 않거나 못하는 등산로이기에 정상에 오르면 그 맛이 다르다. 정상 오르는 거야 항상 쉽지 않지만.  그런데 아, 이게 정말 좋다. 굳이 체력을 소모할 필요 없이 멋진 경치 그것도 바다를 실컷 보면 되는 게 아닌가. 억새와 바다. 이게 오소산의 핵심인데 말이다. 

이런 산이 또 있었나? 청양이나 홍성 쪽은 가을이다. 이런 가을은 좋다. 좀 더 시간이 가면 쓸쓸함만 남길 텐데... 논에 심어진 벼들이 가을임을 곧 수확철이 다가옴을 알려주는데 반대편은 바다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저 바다다. 생각보다 억새는 예전보다 억새는 적었지만 능선 길 재미가 쏠쏠하다. 통신탑부터 전망대까지 오늘은 왕복이다. 이런 날씨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서 그냥 내려갈 수 없지 않던가. 


이런 맛에 산에 오지만 오늘은 특히 더 좋다. 바다 보러 가을 보러. 홍성 방향 전망대에는 사람이 많다. 이 중엔 여기서 비박을 한 사람들도 있겠지? 아님, 보다 편하게 전망대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어젯밤을 여기서 보냈으리라. 이런 생각은 거기서 머무는 사람들의 짐이 많다. 틀림없이 백패킹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정도 산에 저 정도 짐이라니. 


사실, 오서산은 비박, 캠핑은 물론이고 서해안 낙조 명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몰 지역이란 것이 서쪽이면 다 해당되고 다 석양을 볼 수 있지만 산에서 석양이라니. 그것도 텐트 안에서 보는 석양이라. 바다에 떨어지는 낙조를 말이다. 물론, 날씨가 좋다는 전제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차고 넘친다. 

여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정상 표지석 부근은 상대적으로 연식이 된 듯하고. 어젯밤을 이곳에서 보냈으면 내려가도 되겠지만 전혀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대낮이라 등산객들에게 민폐니 텐트는 걷은 것 같은데. 그렇지 바쁘지 않으면 내려갈 필요가 없지. 이럴 땐 순간 시간이 정지해도 좋을 듯하다. 


혹시나 해서 낙조, 백패킹으로 오서산을 검색하니 남긴 사진들이 장난이 아니다. 찍힌 경치가 보통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인데 이로 인해 동네 사진관이 하나 둘 사라졌겠지만 이제 어지간한  사진 아니면 작품 반열에 들 수 없을 것이다. 사진사와 사진가의 차이가 이제 거의 없어지는 시대이다. 카메라. 스마트폰 카메라도 성능이 좋아져서 결국 구도 싸움과 상상력 싸움이 될 테지만. 좀 더 멋진 풍광은 좀 더 좋은 카메라로 남겨야 예의가 아닐는지. 


그런데 스마트폰은 아주 좋지 않던가. 주머니에 쏙, 무게도  싹 줄여주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장비 빨, 정말 중요하다. 물론, 그보다 거길 그곳에 가고자 하는 마음 먼저지만. 정상 표지석 앞에서 이것저것 배 채우고 내려가려 마음먹는다. 다음 행선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에 또 오면 되지라고 위로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켕긴다. 더 있다 가라고. 

정상 전망대로 돌아와 허기진 속을 채우려는데 그리고 내려가기 싫어 가방에서 이것저것 끄내 먹는데 자전거라? 와우, 여기까지 산악자전거 끌고 온 분들이 계시네. 광천 읍내 쪽에서 올라왔다는데. 하하. 백패킹 성지에서 자전거 라이딩까지. 오서산이 이런 산이구나. 


어디서 블랙야크 100대 산이지만 산림청 100대 산은 아니라던데... 달라졌나? 뭐 그게 중요하던가. 그저 몸이 가고 마음이 가면 그뿐인 것을. 오늘 느낀 이 느낌만큼은 그저 최고다. 그런데 이분들 왜 정상까지? 정상에서 인증숏 찍으러 올라왔다는데 그러고 보니 가치가 남다르겠다. 산 정상에서 자전거로 인증숏이라. 


너른 들판 가을 향취, 여기에 바다, 그 바다를 실컷 봐서 그런지 마음이 풍요롭다. 그래서 인증숏을 구도를 바꿔가며 계속 찍어줬다. 정상 능선에서 왕복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전혀 피곤함이 없다. 능선 따라 바다 따라 여기에 바람도 선선하게.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었지만 비는 안 오고. 

그런데 오서산 높이가 몇인고? 높이가 690m? 691m? 아님 690.7m?  그게 그거다. 뭐 중요한가. 다 하늘 아래이거늘. 아무리 높아도. 이곳은 다음에 휴양림에서 묵으면서 와도 될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이면 더 좋겠지만 혼자라도 이런 경치라면 자연을 벗 삼아, 바람을 벗 삼아, 억새를 벗 삼아. 더 중요한 바다를 벗 삼아 말이다. 


아 참. 이 산 이름이 오서, 까마귀 보금자리(烏棲), 인데 산주인 까마귀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딱 한 마리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tTGEo3scnq8&ab_channel=%ED%81%AC%ED%81%B4%ED%81%B4TV-%ED%81%AC%EB%A0%88%EB%94%94%EC%95%84%ED%81%B4%EB%9E%98%EC%8B%9D%ED%81%B4%EB%9F%BD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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