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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Nov 11. 2022

봉화 청량산, 이름만 신선한 게 아니었다.

역시 욕심이었다. 원래 계획이란 것이 '계획'아니던가. 결과가 아닌. 마음만큼은 하늘을 날 듯했는데 몸은 천근만근 세월을 다 짐 진 것 같았다. 이런, 어처구니없다. 남들 따라, 그 남들이란 게 산악회 멤버들이었으니, 금강대로 들머리를 삼다니. 이런 어리석은 자,라고 탓하고 싶지만 처음엔 괜찮았다. 잘 따라가나 싶었는데 가다 가다 보니 이게 아니었다. 몸이 힘들어했다. 시작부터 바로 올라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힘들었다.


그래도 장인봉까지 올라 발아래 먼발치 내려다보고 연화봉 쪽으로 해서 청량사 거쳐 횡 내려왔다. 원래 밀석대를 거쳐 축융봉으로 가려고 했던 것인데, 꿈이었나 보다. 꿈은 꿈이고, 계획은 계획이다. 그래도 아쉬워서 그랬는지 산학정으로 내려와서 다시 거꾸로 입석까지 걸어갔다. 뭔가 아쉬워서. 체력을 더 길러서 다시 도전을 해봐야겠다. 그저, 남들이 올려놓은 블로그 보며 부러움에 질질 침 흘리고 있다. 이 정도도 휑하고 내려온 것이 아니다. 말만 그랬다.

그래도 뭐 봉화까지 경북까지 내려올 일이 있었던가. 그냥 미친 듯이 가을과 사랑했다. 가을을 신나게 즐겼다,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건 어디까지 내 생각이고. 그래도 그럼 된 거지. 뭘 바랄까. 그런데 산도 산이고 물도 물이고 단풍도 단풍이고 다 좋다. 한 가지 정말 몰랐던 것은 산에서 내려다보이던 저 물이 흐르고 흘러 낙동강까지 다다른다고 한다.


정말 놀랍다. 여기서 남해라니. 낙동강? 이게 낙동강의 시발점?? 이게 모여서 안동호가 되고 안동호가 굽이굽이 흘러 구미, 칠곡, 달성을 거쳐 남해안까지 다다른다. 청량산 물이 낙동강의 시원이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청량산도 그저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한편에 있는 산일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니, 이런 아둔함. 아, 나는 바보로소이다. 야, 너 태백 여행 갔다 왔잖소. 태백시 황지연못!! 그렇지. 그게 낙동강 시원이다. 그런데 자꾸 강 얘기. 주인공은 산인데. 청량산. 이름도 상쾌한 청량산.

인터넷 뒤져보니 아주 오래전에 산 이름이 수산(水山)이었다가 조선시대에 지금의 산 이름으로 바뀌었다는데, 이 산과 관련돼서 퇴계 이황과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 '토황소격문'으로 유명한 최치원, 심지어 고려 공민왕까지 나온다. 그중에서 이 산과 가장 관련이 되는 이가 퇴계 이황인데 이곳에서 안동까지 얼마 안 되나? 이황이 살던 곳에서 한나절이면 오는 거리였다고 한다.


암튼, 청량산이 퇴계 가문의 산이란다. 퇴계 가문의 산?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하기도 했다는데, 그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를  사패(賜牌)라고 했다. 갑자기 웬 사패? 서울 근교에 사패산도 그와 같기 때문에 사패산을 예로 든 것이다. 사패산이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서 사패산인 것처럼 퇴계의 선대가 송안군으로  책봉되면서 나라로부터 받은 '봉산'이라고 한다. 사패산이나 청량산이나 매한가지란 말인데 그 후 퇴계가 이 산에 들어와서 공부를 했다나?

우리가 잘 모르지만 중국 왕희지에 비견되는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 불리던 김생(711~790?)’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金生窟), 김생보다 후배인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이곳 풍혈대(風穴臺)에서 수도를 했다는 곳. 더불어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와서 쌓았다는 청량 산성까지 산 하나에 얽힌 이야기가 정말 풍부하다.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 산과 관련된 유명 인사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산의 가치가 확 달라 보인다. 여기서 잠시 샛길로 빠지면 경북지역이 서예로 유명한 점도 특이한 것 같다. 전라도 지방이 음악과 그림이라면 경상도 지역은 서예가 유명한데, 유교의 본산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안동지방이 가까워서 인가?

청량산이 과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청량산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산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청량산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매번 가을이면 사람들에게 오르내릴 것으로 생각하니 내가 뿌듯해진다. 뭐 굳이 자부심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청량산 단풍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까? 결국, 단풍과 가을이 이곳 청량산을 부르는 매력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여전히 앞으로도 그곳에서 멋진 가을을 선사해 줄 것을 의심하지 않지만, 내게는 그저 아쉬움 투성이다. 특히 청량 산성을 걸어보지 못한 게 한이 좀 될 것 같다. 유난히 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떠나 이 정도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필히 다음에 산성을 걷기 위한 목적만으로도 이곳에 다시 올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n1gcjuhlhg&ab_channel=HAU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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