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영화를 보면 물 위를 걷는 장면을 간혹 볼 수 있다. 무림의 고수들이 이런 장면들을 연출하는데, 기독교 성서에서 예수가 갈릴리 호수 위를 걷는 것과 '결과'는 같다. 차이라면 영화에서는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정말 미친 듯이 빨리 달려서 안 빠지는 것인지, 그런다고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물위를 걷는 그런 모습이라면 비록 영화지만 예수가 호수를 걸을 때는 그리 경박하게 걷지 않는다.
하기야, 예수가 물 위를 걸으면서 빠지지 않으려고 빨리 달리거나 물에 스치듯 날아간다고 생각 생각해 보면 웃길 것 같다. 그럼 한탄강 물 윗길은? 길이라고 하니 걷는 것은 확실하다. 하늘길도 있는데? 바닷길도 있고.
뛰어난 무공을 입증하기 위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을 묘사하거나, 믿음이 충만하면 있을 수 있는 일로 묘사되기도 하는 물 위를 걷는 행위. 이렇게 사람의 호기심을 구현한 장소가 한탄강에 등장했는데, 이곳이 여행지로 개발된 배경에는 다른 요소가 하나 더 있었을 것이다. 그게 가능케 한 요소 하나 더. 바로 그게 걸을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때, 걸을만한 가치가 뭘까? 운동하려고 굳이 물 위를 걸을 필요는 없을 테고. 당연히 볼 만한 풍경이 구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볼만한 풍경이라? 여기 적절한 사례가 있다. 가서 걸어보니 정말 걸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무협영화나 신앙을 확인해 보려 철원에 가서 물 위를 걸어보려는 사람이 있을까만은. 그 궁합을 이루게 한 것이 주상절리다. 이 단어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제주도에서다. 그 지역이 대포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포의 주상절리는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면 한 번 정도 들러봤을 것이다.
지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지라 한탄강에도 주상절리가 있는 줄 몰랐다. 제주도와 차이점이라면 대포의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있고, 이번의 비교 대상은 내륙 그것도 한탄강이다. 한탄강에 주상절리? 한탄강이나 철원은 그 근처 갈 일이 없다면 굳이 갈만한 이유가 없는 곳이지만 주상절리로 이뤄진 계곡이 있다고 해서 마음먹고 나선 길.
걸어보면 이거 뭐 장난하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제법 걸어볼 만하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한 물 윗길. 주상절리로 이뤄진 계곡 사이를 걷는 것인데 추운 날씨만 아니었으면 제법이란 단어가 더 큰 감탄사로 써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날 추웠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상절리가 결코 가치가 없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곳 철원 한탄강이 북한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이곳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북한의 오리산이 어딜 말하지? 철원을 포함해 포천, 연천까지 총 1165.61 km²에 걸쳐 유네스코가 2020년 7월에 이곳을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는데 그냥 지정했겠는가. 그럴만한 가치가 가서 보면 당연히 입증된다. 이 지역 일대가 이런 지질학적 보고라니. 철원이 북한과 가까운 한국전쟁 땐 북한 땅이었다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이 지역을 잘 모르는 이유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겨울철에도 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 철원지역을 찾는다고 한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과 단체장들의 선거를 의식한 행동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낙수효과가 제법 성공적인 곳도 꽤 많다. 그래서, 이곳도 주상절리라는 지질학적 특성을 잘 살린 성공한 사례라고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뭐 무술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고 가는 사람들이 있겠는가만은, 물 위 길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냥 부교를 설치해서 그 위를 걷는 것이기에, 그런데 그 길이 걸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여기에 계곡 위에 설립된 은하수교와 어울린 주변 경치를 보면 멋있다. 가서 직접 걸어볼 만하다. 가을에서 봄까지 개방한다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강이라 물이 불어나면 위험할 것 같다.
그럼 물 윗길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태봉대교를 지나 시작되는 물 윗길은 송대소에서 들어갈 수 있다. 그곳부터 은하수교에서 다시 돌아갈 수 있고, 원한다면 남쪽으로 더 가서 고석정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이 물 윗길이 아직 완전히 개방된 것이 아니라는데 계획에 의하면 고석정을 넘어서 순담계곡까지 연결하려는 것이 원래 계획이다. 그럼 물 윗길 트레킹이 될 터인데, 순담 계곡부터 시작되는 주상절리 잔도 길과 연결되어 그 자체가 한탄강 계곡 트레킹이 된다.
언젠가 제대로 완주해 봐야겠다. 춥지 않을 때. 한탄강 계곡을 따라 걷는 물 윗길 트레킹이라 상상만 해도 설렌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오늘은 그냥 은하수교까지만 걸어야겠다. 왜냐고? 매표소 직원들이 내 옷차림을 보더니 설레설레 머리를 젓는다. 장갑과 두툼한 외투는 필수라는데, 가다 적당히 쉬라는데 그 적당한 장소가 은하수교다. 고석정까지 걷지 못하는 아쉬움은 송대소와 은하수교 주변 풍경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두 다 은하수교에서 빠져나온다. 아무래도 추위 때문이리라. 송대소에서 은하수교까지 걷는데 아쉬움이 계속 밀려왔다. 거리가 아무래도 짧은 듯한 거기에 입장료가 1만 원인데, 더 걸을까 하다 역시 춥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미련에 아쉬움까지 느끼던 차에 은하수교가 제법 예쁘다. 이 다리 여기저기 둘러봐도 한탄강 주상절리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그냥 은하수교 주변만 둘러봐도 충분히 감상이 될 것이다. 다리 건너 전망대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언제 다시 이곳에 올까?
▶직탕폭포
직탕(直湯) 폭포? 이름이 낯설다. 직접 떨어지지 않는 폭포가 있던가? 이름을 누가 지었지? 높이는 3m, 너비는 80m라고 한다. 직접 재본 것은 아니지만, 폭포치고는 넓다. 우리나라에 이 정도 너비의 폭포가 있던가?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하던데 이 정도 뻥이면 어느 대륙 국가 못지않다. 구체적으로 밝히긴 그렇고. 우리도 대륙 기질이 있던가? 이를 폭포라고 하니 폭포인 듯한데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개울가에 만든 보같이 보인다. 직탄(直灘) 폭포라고도 하는데, 흐르는 물아래 돌이 현무암이라서 가치가 다른 가보다.
신생대 제4기에 만들어진 현무암이라는데 신생대라? 어려워서 패스해야겠다. 지질학자도 아니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폭포?? 폭포라고 하니 폭포인가 보다 라고 생각되는, 그런데 전체 한탄강 자체가 지질공원이라고 생각하니 달리 보인다. 몰랐으면 ' 에게' 하고 발길을 돌렸을 수도 있는데 폭포 주변을 보면 그냥 주변이 주상절리다. 그렇구나 하고 다시 보니 정말 폭포의 가치가 달라 보인다.
이 직탕폭포와의 궁합은 주상절리가 아니다. 이곳은 원래 주상절리가 주인공이 아니니 주상절리야 그렇다 치고 폭포의 상대는 돌다리다. 돌다리? 이런 비슷한 이미는 진천에 있는 농다리 아니던가? 진천에 가서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 느낌은 모르겠으나 명확히 다른 것은 확실하다. 이곳 다리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누가 언제 만들었지?
현무암 다리라는 것도 그렇고 앞에 놓인 직탕폭포가 아니었다면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을 돌다리. 엄청난 수량과 낙차를 구비한 폭포가 아니라도 폭포는 엄연히 폭포인 것을 거기에 현무암 돌다리까지 그냥 스쳐가기엔 그저 그런 장소가 아니다. 어쩜, 이곳도 철원의 숨은 비경 같은 곳이다. 아니지, 이젠 너도나도 들러보는 여행지 아니던가. 그런데 그나저나 한탄강의 한탄 뜻이 뭐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