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한때 아해였다. 그럼 지금은?

김연수(2016).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문학동네

by 길문

당신도 한때 아해였다. 이건 누가 봐도 참인 명제다. 거짓일 수 없다. 아해를 건너뛰고 어른 된 자 나와봐라. 100% 장담한다.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더 다양했을 텐데. 갑자기, 사방이 꽉 막힌 것 같다. 답답해진다. 누구든 똑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것 같다.

이 말이 당신도 한때 미숙했어라는 말과 동의어 같기도 하고, 나도 그랬는데 너도 그랬구나 하고 위안이 되는 것도 같고. 그런데, 글을 읽고 보니 아해가 아닌 것 같았다. 작가가 조숙했다고나 할까. 이 책이 나온 게 2002년이 처음이니, 대략 작가가 30대 초반이었나 보다. 여전히 나이가 중요하다고? 그럴 리가.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냈을까?


"눈보라가, 검은 보랏빛 어둠 속으로 두서없이 쏟아졌다." 이게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첫 단편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총 9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제목이 평범하지 않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도 그렇고,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도 그렇고,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도 그렇고. 모든 제목이 그렇지 않지만 작가의 조탁(彫琢) 능력이 남다르다. 그러니 작가지만, 다른 단편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도 그랬다. 제목 때문에 반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힌트는 '기억의 복원'이란 단어다. 평범한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책 표지 뒤편에 실린 해설 보고 알게 된 거지만, 그랬다. 그러고 보니 누구든 훌륭하게 작가가 될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아해였는데, 지금은 아닐 때고. 그럼 그 많은 시간들 이리저리 둘러보고 살펴보면 복원이 안 되겠는가? 그 복원이 누군가 잊고 싶고, 묻어뒀으면 하는 기억도 많겠지만, 그 누군가는 그걸 추억으로 회상하며, 겨울을 나기 위한 다람쥐의 저장고로써 충분하지 않겠는가?


역시나 작가 김연수도 하나씩 꺼냈을 그 도토리가 심상치 않다. 그러지 않았으면, 작품집이 나오지 않았겠지만. 젊다면 젊었을 시간들이란 게 결국 '언젠가 흘렸을 누군가의 눈물 아니었던가.' 그래서, 젊은 게이꼬도 잃지 않고 어른의 길을 꿋꿋이 간 것이고, 그게 경자인지 유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게이꼬도 많은 눈물을 남모르게 흘렸을 테니 말이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에서 아버지가 젊었다면 그 아버진 분명히 아르헨티나로 갔었을 것이다. 경상도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도 5.18이 누군가 칼로 베인 상처로 남아있겠지만, 당시 아버지 세대가 갖은 상처를 보듬고 받아들이기엔 아직 어렸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누구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흔적들, 시간으로 보면 그런 어른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것 같기는 하지만 역사까지 지울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라고 말하는, '뉴욕 제과점'만큼 기억에 의지한 글도 없었을 것 같다. 그 아스라한 파편들을 하나하나 엮어서 자기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보여주다니. 그런데,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봐도 우리도 이렇게 컸다. 이렇게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말이다. 그럼 당신은 몇 살?


누구든 '첫사랑'을 이렇게 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가 갖은 그 회상보다, 그 기억과 함께 묻어나는 술집 작부 혜지 누나의 삶이 더 눈에 밝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시대 누군가의 누나들은 자기 한 몸 희생해서 가장이 되기도 했는데, 그래서 '혜지 누나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고, 일류대에 합격한 행복이 시대에 휩쓸려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에 도피 생활도 하게 되다니.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오지 않았으면 하는 똥개. 그 똥개가 우리 똥개일 리는 결코 없어야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 한 명씩은 꼭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변두리거나 달동네 거나 지방 한적한 소읍에도 말이다. 그럼 똥개의 반대는 뭘까? 똥개 같은 인간 말고 누구든 환영받는 그 무엇 말이다. 그럼, 그땐 개가 아니겠지?


군대 갔다 오면 진짜 싸나이가 되던가? 이런 신화는 누가 만들어서 유포했던 것일까? 이때, 싸나이는 어른을 의미할 텐데, 어른이란 뭘 말하는지? 나이 들면 시간 가면 다 되는 어른, 그 어른 말고 다른 어른이 있던가? 멧돼지 잡으러 간 세 사내 중 군대 앞둔 주인공 빼고, 나머지 두 명은 어른이 아니란 말인가? 이게, 가능한 건 누구든 한때 다 아해였기에 이런 산통이 필요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어른이 되지는 않았다. 어쩜, 나도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 아이면서 어른 인지도 모른다.


절에 가서 연등을 다는 이유가 거게 가 다 비슷한 연유 때문이지만,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만큼은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가 나온다. 죽은 아이. 그 아이를 위해 수의를 만드는 엄마. 산속에 들어가 방향을 잃는 게 어른 아빠지만, 세상에 없는 아이가 작가로 환생한 것이 아니기를. 며칠 전 강남에서 음주 운전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꼭 이랬겠지?



어느 날 우연치 않게, 계획해서 지방 보육원에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학원 자율화란 허울 좋은 명분 속에서도 시대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아픔이 아니라도 정말 이런 마음이었다. 제발,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언젠가 세상을 떠나도록 강요받는, 그게 현실인 19세라는 울타리. 그 너머엔 홀로서야 한다는 참혹한 현실이 입 벌리고 앉아 떨어질 먹이를 기다리고 있지만. 제발,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말기를. 그래서 노래 <캔디>처럼 꿋꿋하게 이겨 내기를...


정말 작가 말처럼 세상을 사는데 그리 많은 불빛이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을 지금 그것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읽는 시점이 그땐 우리 다 그랬다고 통용되는 것보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소중한 불빛이 되었으면, 아마 난 멋진 아저씨가 되었을 텐데... 아직, 잘 모르겠다. 기회가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p.s.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내가 사피엔스라서 쓰지 못하겠다. 내가 사피언스가 아니었으면 사피언스를 욕할텐데, 유발 하라리를 인용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고 보니, 어른이 다 어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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