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힘

김연수(2016). 밤은 노래한다. 문학동네

by 길문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했다. 머리가 어떻게 복잡해질까? 생각이 많아졌겠지. 그럼, 읽은 소설이 좋았겠군. 그렇다. 이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평상시 생각하지 않은 일들이 생각난 것이겠지. 용량이 딸리는데, 그만 생각하랬더니. 그러니, 역시나 버벅거린다.


소설의 힘이라고 써놓고 보니, 갑자기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뭔 내용이었더라? 당연히 보지 않았느니, 모를 터. 이 소설은 당연히 봤으니 알 터. 불륜을 다른 영화였나? 부끄럽다. 그런 내용이었다면...... 이 소설과 비교하다니.


밤 이야기다. 밤이 나오니 낮도 나오겠지? 밤은 어두울 테고, 낮은 빛이 있으니 밝을 테고. 그런데, "빛도, 어둠도 아니면서 동시에 빛과 어둠인 세계"(p.133). 그냥 보통 사람들 사는 게 이렇지 뭐 할 수도 있겠는데, 이게 공산주의라면 달라진다. 그것도 간도 땅 공산주의자 얘기라면 말이다.


쉽게 백두산 일대를 서간도라 한다. 동간도는 북간도라고도 하며,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을 말한다. 이때, 동간도 내지 북간도가 보통 간도라고 한다. 갑자기 낯설어진다. 간도라니. 훈춘, 왕청, 연길, 화룡 하면 조금 알 것도 같다. 이곳에서 벌어졌던 민생단 사건. 들어나 봤을까? 이런 사건도 있었다니. 거기에, 조선 공산주의 운동, 중국 공산주의 운동,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진 곳. 갑자기 숨이 막힌다.


그냥 연애 얘기나 하지. 소설인데. 그래도 재밌었겠지만, 생각이 많아진 건 이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에 기초한 소설. 일본의 대륙 침략과 더불어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하는 이념 싸움이 의심 싸움이, 아니 의심 학살이 돼버렸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박완서 말처럼 정말 소름이 끼친다. 이것도 우리 역사였다니.


일본이 제국주의의 야만을 대륙으로 뻗칠 때 그곳엔 여러 공산주의가 혼재되었었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일국 일당 원칙을 세워 많은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그래서, 내륙보다 힘이 약한 중국 공산당이야 당연히 자기 힘을 강화하려고 했을 테고. 간도 대부분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조선혁명도 중국 혁명과 같이 이루고자 했을 테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중국 공산당이 싫어했을 테고.


1932년 2월 간도의 친일 조선인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했던 민족주의자나 전향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민생단이란 정치조직을 결성했다 해산했다. 일본이 간도에서의 조선인의 자치나 간도의 조선 합병이 중국을 반발할까 두려워 해산했던 민생단. 모든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일제의 스파이가 중국 공산당에 침투했을 거란 의심. 실제로 그랬겠지만, 이 의심을 갖도록 한 일제의 전략이 결과적으로 먹힌 것이지만, 그렇게 희생된 사람이 일제가 토벌한 항일 투사 숫자보다 많았다니.


해제를 쓴 한홍구의 말처럼 '많은 나라에서의 혁명운동은 스파이의 활동보다 스파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공포가 더 파괴적'이었다는 것은 일제가 토벌해서 죽인 숫자보다 서로 의심해서 죽인 숫자가 500여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 중국 공산당은 조선인을 믿지 못하고, 조선인은 같은 조선인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고. 이게, 역사였다.


민생단을 알게 해 준 것이 소설의 '힘'이지만, 그냥 사실만 나열한 역사였다면, 인터넷에 나온 지식만 검색했다면, 그리 비극으로 여겨지지 않았겠지만, 여전히 마음이 '먹먹'하게 만든 것은 소설, 소설의 '힘'이었다. 이게, 소설의 힘이었다. 워낙, 비극적인 사건을 소설로 현실화하지 않았다면, 그냥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에 던진 짱돌 하나였을 텐데 말이다. 그냥, 읽고 그랬군 하고 스쳤을 사건.


소설에 감정이입을 하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비극이 비극으로 벌떡 일어선 것이다. 소설 때문에 말이다. 인간이 다 그렇지 뭐. 하고 끝난다면 좋으련만. 이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 같아서 말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빛일지라도, 빛 다음은 다시 어둠이 아닐는지. 작가 김연수가 다시 보인다. 어떻게? 멋지게?




"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다."


"밥을 흘려도 민생단(어렵게 구한 식량을 허비하니까), 밥을 설구거나 태워도 민생단, 밥을 물에 말아 먹어도 민생단(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은 전투력을 약화시키니까), 배탈이 나거나 두통을 호소해도 민생단, 사람들 앞에서 한숨을 쉬어도 민생단(혁명의 장래에 불안감을 조장하니까), 설사를 해도 민생단, 고향이 그립다고 말해도 민생단(민족주의와 향수를 조장하니까), 일이 어렵다고 불평해도 민생단, 일을 너무 열심히 해도 민생단(정체를 감추려고 일을 열심히 한 것이니까), 일제의 감옥에서 처형되지 않고 살아돌아와도 민생단, 오발을 해도 민생단, 가족 중에 민생단 혐의자가 나와도 민생단, 민생단 혐의자와 사랑에 빠져도 민생단, 옷을 허름하게 입어도 민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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