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 작가가 뭘 말하는지?

김연수(200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by 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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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의 하나다. 책을 오독한 독자 때문이거나,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독자의 지적 능력 때문이거나. 이러면, 둘 다 독자 때문인데. 혹여나 읽는 독자 기분 나쁠 것 같다. 독자라는 범위가 너무 넓다. 그냥 나 때문이다.


이렇게 넘어가려 했다.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책들이 많다. 그래서 패스하려고 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나온 듯한 느낌. 그런 적이 있었나? 그렇지 않듯이 그냥 넘기기가 그랬다. 왜냐고? 김연수니까. 이 책 전에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와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나서 역시나 '김연수'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결론적으로 지극히 주관적으로도 아니었다. 천주교에선 '내 탓이요'를 강조했었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탓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 책을 작가는 왜 썼을까? 우문이다. 현답은? 작가니까. 그래서 질문을 바꾸면,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는 바가 뭘까? 답이 쉽지 않다. 작가 편이 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럼, 왜 이 책을 읽었을까? 우선, 제목이 멋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리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상당히 지적이면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작가니까 해서 골랐는데, 이 책 제목은 그가 직접 만든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작가의 역량이 폄훼될 일은 전혀 없다. 역으로 이게 작가가 갖는 인식의 지평을 보여준다.


책 앞부분에 메리 올리버(?)가 쓴 '기러기'란 시구절에 나온다. 작가 스스로 밝혔던 것처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냥, 요즘 날씨와 딱 어울린다 싶었다. 그래서 '독자가 누구든, 읽히기 쉽지 않은'이라고 바꾸고 싶다. 그런데,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바가 뭘까? 모르겠다. 쉽지 않다.


내용이 너무 넓었다. 다루는 게 정말 많았다. 이런 느낌은 그의 책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살짝 느끼긴 했다. 워낙, 다룬 역사가 충격적이라서 그걸 잘 소화해서 좋았는데, 이 책은 아리송했다. 책 뒤표지에 실린 문학평론가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많아졌다. 같은 문학판이라서 서로 챙겨주는 게 아니라면, 이런 평가가 나올 수 있을까? 역시 둘 중에 하나다. 그들이 나보다 엄청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이거나, 나야 어차피 문외한이니까 하고 넘기고 싶거나. 그렇다고 작가를 비판하고 싶다고? 그건 전혀 아니다. 비판한다고 사람이 바뀌지도 않지만, 여기에 글 써도 이걸 작가가 읽을 확률은 제로다. 좋은 작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 말고. 이런 바람이다.


1990년대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된 주인공 '나'와 여자친구 '정민.' 여기에 정민의 영민한 삼촌과 학병으로 징집된 할아버지.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다른 이름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헬무트 베르크와 처음부터 가짜인 강신우(=이길용)까지. 대하소설처럼 시대의 흐름을 담담히 걸어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거기에 틈틈이 섹스까지. 이 부분은 누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소설 같다고 칭하던데, 그 섹스에 대한 묘사가 양념? 작가는 다른 생각이었을까? 작가가 의도한 "삶의 의미는 이해될 수 없기"때문인가?


그는 스스로 글쓰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작가라던데, 안 그런 작가도 있나? 있다. 어느 유명 작가는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나와서 지적 현학을 설파하는 게 정체성을 찾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뭔가 가치관이 다르겠지. 작가 김연수와 말이다. 대부분 1990년대를 살아낸 사람들이 그렇듯이 작가도 1990년대를 보내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젊은 꽃들이 스스로 불이 되어 사라진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간 영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 그의 눈에 그 시대가 어떻게 비쳤는지 알 것도 같다.


민주화 운동과 당시 벌어졌던 분신, 유서대필사건, 학생들의 방북, 주사파의 등장 등 숨 막혔던 큰 역사적 물줄기 안에서 살아남은 개인들의 기록. 그냥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흐름 속에 개별 인간들이 어떻게 부딪치며 살아갔는지 농밀하게 보여준 것도 아닌 것 같다. 이걸 작가가 의도한 것일 수 있지만, 뭔가 개연성이 글과 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작가가 의도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였나 보다. 이 글이 계간 문학동네 연작물이라서 이렇게 글이 써진 것 같기도 하다.


1980년대 활화산처럼 타오른 학생운동이 1990년대를 거쳐가면서 종국에는 사그라들었지만, 그 시대적 흐름 속에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람 아니던가. 그때 누군가 그 시대를 살거나 살아남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까? 이게 실질적으로 어렵고 역사는 세세하게 이를 기록하지도 않기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주장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하는 직업이 작가 아니던가.


살아가는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라는 이 당연한 통찰력이 시대가 변하면서 조락해가는 거대 시대 담론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완성도는 정말 모르겠다. 스스로 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진 것은 아닌지,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스스로 이를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앞선 것은 아닐는지. 문학평론가들이 이를 해석해야 이해가 된다면...... 역시나 문해력이 뒤진 독자 탓이지만. 이건 나한테 해당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록 소설이지만 거대담론 속에 묻힐 개인들의 실존을 그럴 수 있게 그려낸 건만큼 작가의 노력일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글로 시대를 살아남게 하니 다시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던가. 이게 소설가의 힘이지만, 다른 그의 소설만큼은 아니라는 체험만은 확실했던 것 같다. 이것도 같은 작가 글을 계속해서 읽은 성과인 것 같은데, 내 스스로도 그렇듯이 내가 아닌 다른 작가를 이해한다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것만큼은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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