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도 당신의 일부였다?

정대건(2020). GV 빌런 고태경. 은행나무.

by 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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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실패가 그 누군가의 일부였음을 모르는 이 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스스로 기억 속에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뿐.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것 같은데, 소설가라니...... 이것도 멋진 인생 같다.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도 하는 사람도 많으니. 기대가 된다.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아서 무난하고 소박하다는 아쉬움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던 손정수의 평가. 정확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이 책의 평가 중에서 손정수의 평가가 내 생각과 일치했다는 점.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GV(Guest Visit)란 단어와 GV 빌런 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렇구나. 관객과의 대화와 그 대화를 어그로(aggro) 하는 사람에 대한 소설이라니. 영화판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 그 덕분에 흥미로왔다. 꿈을 먹고사는 사람들. 영화가 그렇구나. 그들이 꾼 꿈 중 아주 일부만 샴페인을 터트리겠지? 미디어에 등장하는 몇몇 성공작과 감독들 너머, 신경 쓰지 않았던 영역들에 대한 이야기라니. 신선했다.


주인공은 두 명이다. 실패한 독립영화감독 조혜나와 손을 뻗어 성공을 움켜잡을 수 있었던 조감독 출신 고태경.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일시적일 것 같지 않아 더 두려운 두 명의 인물을 교대로 보여주는 소설. 아마, 작가는 조혜나를 과거와 현재의 분신으로 등장시킨 것도 같은데, 고태경 또한 미래를 투사한 자기 분신 2는 아니었을는지.


실패도 그 누군가의 일부. 그렇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지금까지 성공만 했겠는가. 감추고 싶었고, 없었던 일로 말 그대로 리셋하고 싶은 치부들. 그런데, 그것도 내 일부였다니.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이기 싫지만,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고 '우리'라는 단어를 씌우면 그렇지 뭐 하고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날의 초상. 아, 이건만큼은 받아들이기 싫다. 젊은 날의 초상이라니. 난 아직 젊은데 말이다.


잘 몰랐던 영화판이 이렇게 따듯하게 위로를 서로 주고받는 곳일까? 청춘들이 꿈을 불사르고 성공을 향해 다들 나아갔다면 GV 빌런 고태경도 나오지 않았겠지. 그 바닥이 변하는 현실을 담대하게 헤쳐가며 서로 다독이는 곳이라면 독립영화감독 조혜나가 그렇게 노 굿(NG)과 오케이(O.K.) 사이에서 망설였을까? 살면서 매일매일 선택을 해야 하는 일상과도 같은 현실. 영화판이라고 달랐겠는가?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GV로 활동하면서 영화 데뷔를 꿈꾸는 영원한 감독 고태경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 것을 찍는 영화판 비주류 감독 조혜나의 인생을 교대로 보여주는 내용. 빌런을 찍으면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지 않지만, 잊히지 않고 성공하려는 모습들이 결코 밉게 전개되지 않는다. 얄밉지 않다. 작가가 남자면서 주인공을 여자로 등장시킨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평론가의 말.


그랬다. 작가가 자기 얘기로만 서사를 끓고 갔다면 필패했을 스토리. 여성 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판을 보다 객관적이고 따듯한 시선으로 들여다봤기에, 읽을수록 흡입력이 좋았었다. 그래서, 이 책이 킬링타임용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이를 상쾌하게 넘어서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역량이었다. 아마, 그가 만든 영화들도 다 수준작 이상이었을 것 같다.


가볍게 읽었는데, 자꾸만 실패라는 단어, 그럼 뭐가 성공일까라는 질문과 답을 자꾸만 되새기게 만든다. 실패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청춘에 대한 동감과 위로를 주는 것만큼은 틀림없지만, 실패도 당신의 일부라는 작가의 독백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이건 시도를 해봤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난, 실패만 했기에? 그래서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그랬기야 했을까? 실패로만 점철된 인생이란 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지금 느껴야 하는 작은 행복들이 있다면, 행복의 크기 여부를 떠나, 당신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 아니라 실패이어야만 할 것 같다. 실패하지 않으면 행복했을 텐데, 그때 불행이란 단어를 빼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 행복하다면, 실패였던 과거가 기억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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