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동호 문답’에서 지혜를 배우자 -4
오늘날 학교에 관한 정치는 학교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영역에 두고서 좋은 정책을 찾지 않기 때문에 그 실효를 보지 못했을 뿐이지 노력을 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훈도(오늘날의 교사)를 매우 천한 직업으로 여겨서 빈곤하고 자산이 없는 자들을 구해 그 직을 주어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게 하고 있습니다. 훈도가 된 사람들은 학생에게 수탈하여 자신을 살찌울 줄만 알 뿐이니 누가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알겠습니까? 이렇게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기를 바란다면 연목구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동호 문답’에서 율곡이 자신이 살던 당시 조선의 교육 현실을 꼬집은 내용의 글을 보니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율곡이 살던 시대나 현재의 문제는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직시한 것입니다. 물론 율곡이 살던 당시나 현재 대한민국에도 정말 학생들을 위한 교사는 있습니다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교육이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러한 교육 현실만 꼬집었다면 율곡이 아니겠지요. 율곡은 ‘동호 문답’에서 해결책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오늘날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으로는 다음 방법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팔도 감사로 하여금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내 3년마다 한 번 그 고을에서 경학과 사학에 능통하고 공부의 방향을 알아서 선생으로 삼을 만한 자들을 선발하여 그 이름을 작성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하도록 합니다. 이조는 그 명부를 검토하고 공론을 널리 참작하여 더 정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훈도를 선발할 때에는 반드시 같은 고을 사람 중에서 뽑아서 임명하고 그 고을 사람이 없으면 이웃 고을의 사람을 임명하며, 이웃 고을에도 훈도를 뽑을 사람이 없으면 같은 도 사람을 임명합니다.
율곡이 말하는 해결책은 바로 가르치는 사람, 즉 교사들의 선발을 엄격히 하는 것입니다. 바로 스승다운 스승을 선발해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수라고 율곡은 말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 매년 관찰사가 직접 방문하여 학생들의 성적을 살펴보고, 유생들만 시험을 치고 훈도는 시험하지 않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관찰사가 매년 직접 눈으로 교육현장을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학생들의 성과가 어떤지, 교육을 잘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위의 글을 보면 의문이 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보는 데 훈도는 시험을 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능력이 없는 훈도를 걸러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율곡은 이런 것도 염두 해 두었습니다.
여전히 꼼꼼하지 못하고 데면데면한 데나 볼만한 성과가 없는 훈도는 공적을 최하등급으로 메기고, 또 여전히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학생들을 수탈하는 선생들은 법에 따라 단죄합니다. 이렇게 하면 훈도라는 직책이 매우 중요한 일로 인식되어서 훈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던 선비들도 기꺼이 훈도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율곡은 능력이 되지 않는 훈도들을 과감히 걸러내어서 퇴출시키라고 합니다. 아마도 율곡이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잘 가르치는 훈도들에게는 상을 주어야겠죠? 당연히 율곡은 이 기준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만일 유생이 도학을 숭상할 줄 알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행실을 삼가고 독서에 있어서는 이치를 궁구 하는 것에 주로 힘을 쓰면 그런 훈도는 공적이 최상입니다. 만일 유생이 독서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고 행동을 조심히 하여 흠이 없고 비록 과거시험만을 위해 공부하는 습속을 면치는 못하더라도 승진에 목매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런 훈도는 공적이 그다음입니다. 만일 유생이 글의 뜻을 잘 이해하고 글을 잘 지을 수 있으면 그런 훈도는 공적이 그다음입니다. 공적이 최상인 훈도에게는 장계를 올려 상을 내리고, 6품의 관직에 임명하여 사리의 기를 펴주고, 공적이 그다음인 자들은 그 노고에 관한 장계를 올려 품 급을 올려주어 포상함으로써 가르침을 독려케 합니다. 성적이 그다음인 자들은 관찰사가 격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 노력하여 진보하게 합니다.
율곡이 제시한 훈도들의 포상 기준은 ‘인(仁)’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수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선 학생들을 바르게 이끌고 인격적으로 완성시키도록 하는 사람을 최고로 꼽았습니다. 유생이 도학을 숭상할 줄 알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행실을 삼가고 독서에 있어서는 이치를 궁구 하는 것에 주로 힘을 쓰게 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율곡이 가장 경계한 것이 바로 과거시험 합격이 목적인 교육, 오늘날로 말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입니다. 율곡이 말한 과거시험 합격만을 위한 교육은 덕(德)과 의(義)가 없는 교육입니다. 덕(德)과 의(義)가 있는 교육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덕(德)과 의(義)가 없는 교육, 이것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쫓게 하는 교육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재를 선발할 때 문(文)과 예(藝)만을 중시하고 덕(德)과 의(義)는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한 학식을 갖추고 세상 사람들을 뛰어넘는 덕행이 있더라도 과거시험을 통하여 등용되지 못하면 그 사람이 가진 도(道)를 시험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율곡이 말하는 교육인 ‘그 배움은 반드시 인륜에 근본을 두게 하며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선한 것을 잘 가려서 향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덕을 이루는 것’이 새삼 와 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도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감시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