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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태유 Nov 24. 2016

인문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2. 상대를 존중하라.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2 

여론을 빌려 자유를 구속한다면 그것은 여론에 반해 자유를 구속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보다 더 나쁜 것이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위의 글은 어느 신문의 사설란에 들어갈 법한 말입니다. 실제로 사설에 이런 글이 실렸다면 좋은 글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위의 글은 사설에 실린 글이 아니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실렸던 글입니다. 알다시피 밀이 자유론을 쓴 시기는 19세기 중반, 그러니까 1800년대 중반이 되겠지요. 그 시대에 이런 자유를 논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그리고 이 보다 더 알아듣기 쉽게 자유에 대해서 논한 글이 있을까요?


그러면 밀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론’에도 나와 있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입니다. 이는 우리 헌법에도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말하는 것이 위에서 밀이 말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출판·집회·결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합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그 표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례로 내가 논문을 작성하는데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표시 없이 사용했다면 그 논문은 표절이 되고 그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고 때에 따라서는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만일 이런 책임이 없는 자유라면 방종이 되겠지요.


그리고 ‘언론·출판·집회·결사’라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소수의견이라는 이유로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특히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제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면 자신과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예 적으로 생각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사람들에게는 ‘자유’라는 기본 정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내 의 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상대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 의견만 말하고 상대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억압’이라 해야 되겠지요. (물론 여기에는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억압은 밀이 ‘자유론’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만큼 억압이 크면 클수록 자유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떤 생각을 억압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행위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류에게까지 - 그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 - 강도질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을 저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그러한 행위는 잘못을 드러내고 진리를 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는 낳는다.


밀은 생각을 억압하는 것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현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강도를 하는 것이라는 조금은 과격해 보이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 표현의 과격해 보일수도 있지만 틀린 말을 아닙니다. 우리의 교육을 보면 그것이 바로 나타나죠.


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것은 누구죠? 가정에서의 부모부터 교사나 교수 같은 사람들이요. 이 사람들은미래 세대가 아니라 기성세대입니다. 이 기성세대들이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억압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요? 세뇌를 통해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뇌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ㆍ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이라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이 세뇌의 사전적 정의에서 보듯 그 뜻에는 ‘억압’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세뇌가 있을까요?


일례로 수직적이 문화가 그것입니다. 수직적인 문화는 ‘상명하복’이라는 군대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일제가 심어놓은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만 해도 전투에 임하기전 부하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부하들도 이순신이 잘못 판단한 점이 있다면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종도 어전 회의를 할 때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도 세종이 잘못 판단한 것이 있거나 의견의 다른 것이 있다면 스스럼없이 말을 했습니다. 더 올라가면 신라의 화랑도도 이런 것입니다. 이것만 봐도 ‘상명하복’은 우리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상명하복’문화는 일제가 조선사람을 통치하기 쉽게 할 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직도 머릿속에 세뇌되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만 봐도 ‘세뇌’라는 것이 아주 무서운 것이지요.


때문에 밀은 ‘자유론’에서 ‘억압’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억압이 없는 진정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우리 사회에 대비해 본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하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신의 표현에 책임을 지고 그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진정 있을까요? 이것이 있는 날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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