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苦尽甘来)의 배신
굳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혹은 나의 의지대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들쳐 메고 한 걸음 한 걸음 고집스럽게 딱딱하고 높기만 한 돌계단을 올라간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나는 이 영악한 돌계단을 다 올라가면 나의 이데아가 지향하는 '천국'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니, 장담해왔다.
하지만 거친 들숨과 뜨거운 날숨을 내쉬기를 반복하며 힘겹게 올라간 마지막 돌계단 위에서 나는 추락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尽甘来)'는 벼랑 끝에 내몰린 아이에게 "결국 다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일시적 방편이 되어버렸다.
고생 끝에 천국이 올까. 세상은 물론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는 구조이며, 공익(公益)이 우선시되는 사회 속에서도 사익(私益)은 공공연하게 추구되고, 수많은 예상치 못한 그 빌어먹을 변수들을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어릴 적 나의 근거 없는 자존감은 언제든지 신명나게 꺾여버릴 운명이었다.
마지막 돌계단 위에서 누군가 나를 다시 바닥으로 밀었을까. 아님 "마지막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예상 못한 우렁찬 목소리에 놀라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고 만 것일까.
나는 마지막 돌계단 위에서 추락'할 수도 있다'는 당연한 발상을 하지 못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은 공평하며, 실패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성공으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여겼다.
내가 선택한 길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장애물들을 넘으며 꿋꿋이 걸어가도, 대자연은 오아시스가 아닌 또 다른 장애물을 나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연한 이치를 나는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고진감래(苦尽甘来)와 구원에 대한 나의 맹목적 신뢰였다.
고(苦), 고(苦), 그리고 고(苦), 이 당연한 이치를 인정해야 하는구나. '마지막 숨을 있는 힘껏 토해냈을 때의 감래(甘来)라는, 내가 내맘대로 한정한 기간은 무의미했다. 비탈길에서 벼랑을 만난 그 모든 과정 끝에 천국이 올거라는 맹신이 아닌, 노력도 언제든 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어이없고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인정해야 하는구나. 고통(苦疼)은 그저 삶의 압축이기에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필연적인 무엇이었구나.
한결같이, 꿋꿋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그저 살아가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