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는 왜 스스로 떠났을까
창(娼)
여자가 자기주체성을 최대한 끌어내려 하는 직업. 몸뚱아리 하나로 가장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직업. 자유로부터의 탈피이자 구속에 대한 저항.
낭만적인 도시의 대명사 파리로 신혼여행을 온 연화와 남편. 맑고 화창한 파리의 오후, 지붕이 없는 파리의 이층버스에 앉아 남편의 바지지퍼를 풀고 성관계를 맺는 연화. 창녀들이 즐비한 파리의 어느 뒷골목에 있는 중국집에서 밥을 먹다 말고 창녀들이 하나둘씩 줄서있는 '연화'라 적힌 버스에 호기심을 가지는 연화. 그 버스에서 받아온 콘돔에 활짝 웃는 연화. 그 날 밤, 연화는 악몽을 꾸고 남편에게 애무를 애원한다 아니, 부탁한다. 다음 날 오후 인적 드문 한 카페에 연화를 홀로 두고 남편이 잠시 담배를 사러 나간 뒤에 차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연화는 홀연히 사라진다.
사라지기 직전에 결혼 반지가 껴있지 않은 남편의 넷째 손가락을 보고 자신의 목걸이 줄에 반지를 끼워서 준 연화는 불과 몇 분 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기도 모르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까, 아님 광활한 세상 속 홀로 가진 이 무조건적인 자유로부터 소속받고 구속받고 싶어했던 것일까.
전수일 감독은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지를 표현해내고 싶었다고 하지만, 연화의 실종을 '운명'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연화는 과거로부터 실종직전의 삶까지 늘 느껴왔던 참을 수 없는 자유의 가벼움을 탈피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무조건적인 생명력, 사랑을 할 때에도, 글을 쓸 때에도, 여행을 할 때에도, 구걸을 할 때에도, 뒷골목 어딘가에서 남의 돈을 훔칠 때에도, 개인의 주체성은 무조건적으로 자유롭게 작용한다. 버스위에서 충동적 욕구에 따라 속옷을 벗고 성관계를 맺는 행위는 연화가 무조건적인 자유안의 공공연한 질서속에서 최대한 저항을 하는 것일까. 그 숨막힐 듯한 자유의 모순에 반항하듯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연화는.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가듯이, 연화는 그렇게 몸뚱아리 하나 갖고 태어나 몸뚱아리 하나로 살아간다.
연화는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던 것이다. '자유'라는 감옥에 갇혀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 연화는 결국 스스로 남편을 떠나 몸뚱아리 하나로 자유와 구속의 균형을 지켜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