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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May 29. 2021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악물고 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그날 저녁, 나는 바나나 한 입을 용기 내어 베어 물었다. 나의 첫걸음이자 용기, 무섭게 늘어날 나의 허리 치수와 더 이상 입지 못할 마르디 마른 옷가지들을 외면하면서 몇 번이고 나는 가슴에 드는 피멍을 그대로 삼키며 고개를 올려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려 애썼다. 노을이 지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밤이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나의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을 해소하려 했고, 바나나 한 입으로 시작한 나는 어느새 바나나 한 개 전부를 먹을 수 있었다.

 살이 올라올 때마다 드는 가슴의 피멍을 숨기고서 나는 건강해졌다. 불안했지만 행복했고, 화사한 햇빛을 받으면서도 그림자를 드리우는 음지 식물과 같았다. 차가운 물속에서 두 눈만 내놓은 채 숨을 참으며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혹여나 살이 찐 나의 모습을 증오하진 않을까. 내게 살을 찌우길 권하던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미워해보기도 하였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분명히 온몸의 지방이 소멸되어 가는 상태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고, 더 끔찍했던 건 나 자신도 그걸 알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죽여가는 행위.

 그리고 머지않아 사회의 쳇바퀴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을 때 또다시 발견하고 말았다. SNS와 여러 패션 브랜드들의 모델들을 보는 나의 눈이 찌푸려지고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나와 나의 몸은 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뼈의 골격이 훤히 보이는 여자들을 원한다는 것을. 아직 완치되지 못한 나의 마음, 의무와 욕망 그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나의 폭식.

 길을 잃었다. 늘어난 뱃살은 희망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거울 앞에 요가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하려 하자, 마른 몸을 이끌고 운동에 중독되어 근육이 손상될 만큼 몸을 심하게 움직이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끔찍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다가와 머리가 지끈 아파오고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는다.

 내겐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체중을 재지 않은지 2주가 훌쩍 넘었다. 평생 나에게 붙어있는 이 살들을 바라보며 불안에 떨면서 살 수는 없다. 나의 체지방률은 나를 구성하는 숫자이고, 나의 이름 석자와 내 눈동자는 그 무엇과도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나’이다. 누구도 나에게 살을 빼라고 혹은 무엇을 어떻게 먹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체중을 재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나는 굳이 다이어트 식단과 마른 몸매를 권하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거나 사회와 힘든 타협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나를 날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싶다. 길을 잃은 나는 아마 오랫동안 나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할 것 같다. 그 과정들 속에서 몸뿐만이 아닌 마음까지도 살이 통통하게 올라 단단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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