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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Oct 07. 2016

자유롭고 열정적인 나라

암묵적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한 스포츠브랜드 광고에서 운동복을 입은 여자가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땀을 흘리며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습기가 많은 숲 속에서 땀을 흘려 화장이 조금 지워져도, 머리가 헝클어져도, 옷이 땀으로 젖어 축축해도 아무도 보지 못하고 관심을 주지 않는다.  자기의 속도에 맞춘 걸음으로 목적지가 없이 그저 뛰어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그 여자를 보며 저 숲 속에서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 맘대로 뛴다면, 주변의 풀들이 자기보다 빨리 자라나든 시들어 떨어져버리든 신경않고 그저 자기자신대로 자라는 자연만이 있고 나도 그들처럼 그저 나대로 뛰어간다면, 아 얼마나 자유로울까.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언행을 보이는지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아니 '잣대'를 대지 않는다.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에 내가 항상 웃고 있다가 무표정일때면 호스트아빠가 'smile'이라며 웃으라곤 했다. 항상 고민이 없이 밝은 사람이 있을까.


 중국에서는 비교적 나를 억누르는 시선이 없다. 내 연령에 '적합'하게, 나의 생김새에 '적합'하게, 나의 신분에 '적합'하게 행동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규정에서 너무나 자유롭다. 거리에서 사고가 나면, 시장에서 말다툼이 나면, 공공장고에서 애정행각을 하는 커플이 있으면, 가벼운 탈선을 하는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선악을 구분짓는 규범이 아닌, 공동체 속 개인의 의식 하의 '시선'속에서 그런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가벼운 탈선이 자신의 일반적인 의식 아래 용납되지 않는다면, 땅은 넓고 인구는 많기에, 그저 '인정'하고 넘겨버린다.


 고층 빌딩들 뒤로 고집스럽게 후통(胡同)을 지키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에서부터, 블랙과 챠콜 등 무채색이 아닌, 다양한 컬러 표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의 옷차림, 삶의 행복이라곤 추호도 없어보이는 무표정한 얼굴 위에 번지는 미소, 그리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다가 내가 서툰 중국어로 말을 건네자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아저씨. 중국인들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렇게 당연한 내적 표현에 솔직하다.

  시선에서 자유롭고, 그래서 더 열정적인걸까. 만만디(慢慢地)를 외치는 여유로운 사람들과 시선에서 자유로운 열정적인 사람들. 중국은 여전히 어두움과 밝음, 좋고 나쁨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그런 당연한 이치를 수긍하고  자기방식대로 자유롭게 표현한다.


 나를 비교적 자유롭게 놓아주는 땅이고, 그래서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내가 뛸 수 있는 속도로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자유롭게 뛰어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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