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고르며 마음을 놓다.
붉은색 노을이 버스 안을 검게 물들이고 있는 저녁 한 때,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내가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자신이 대한 질문이자, 이사람 저사람 만나보고 중국을 겪으면서 문화적 차이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차이에 대한 두려움 또한 많아진 탓이었다. 중국인은 이러하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아니라 점점 중국인도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又善良又亲切(선량하며 친절하다)가 중국인을 만날때마다 그들에게 내가 건넨 말이었다. 한국인에게 선량하고 샹냥하며 순박하게 웃어주는 모습이 너무나 좋다.
하지만 선량함과 친절함을 떠나, 한국에서나 그 어느나라에서나 그렇듯, '인간성'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개인적 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이 나라에서 완전하게 나의 전부를 형용할 수가 없기에 나는 많이 두려웠고 지금도 두렵다. 중국어가 아직 완전하게 나의 언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한정된 범위내에서 나를 설명하고 부딪혀야 하고, 나를 완전히 이해시킬 수가 없기에 내가 어떠한 사람으로 보일지, 어떻게 믿음을 줘야 하는지, 내가 지금 올바르게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고 두려웠다.
청도에는 붉은 지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많다. 독일식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붉은 지붕 밑으로 빛이 바랜 하얀 벽과 철문은 우아함과 촌스러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지녔다.
내가 앉아 있는 곳 창문 너머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색이 바랜 검은색 낡은 차의 먼지를 터는 아저씨가 보인다.
이른 아침에 아이의 양손을 잡은 젊은 부부가 허름한 건물의 문을 나서고 ,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아침 공기를 가르며 출근하는 남자의 환한 웃음을 엿본다.
늦잠을 잔 바람에 모두들 숙소로 돌아간 뒤에 식당에서 학식을 먹는 도중 옆자리에서 급식아주머니와 경비아저씨가 각자 모자를 벗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엿본다.
학교 앞 나와 룸메이트가 매일 가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은 하루종일 핸드폰을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우리가 오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를 위해 짧은 중국어로 말을 건넨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백만가지 천만가지지만, 인간성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소유이며, 공간을 초월하여 내재된 인간성은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나아가고 있다. 일반적인 사실이 아닌 올바른 경향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숙소에 가만히 앉아 창문 너머로 그들의 세상을 엿볼때면 이 넓은 대륙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살던 곳과 다름없는 창 밖 풍경을 보며 숨을 고루고 마음을 놓는다. 어떻게든,이렇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