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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May 24. 2017

칭다오에서 출근한지 223일째 되는 어느 날

내 안에 부재하는 부동의 온기

 섬 한가운데에, 외딴 섬, 여기서는 가늠도 못할 만큼 저 멀리 있는 섬에서 나 혼자 살아가는 기분이다, 항상.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아무리 무리에 끼어보려 노력해봐도, 같이 있으려 해봐도, 나는 혼자다.

 나는 아직 외지인이다. 너무 자만했다. 부끄럽다. 포장마차마저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밤, 칭다오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가로등 하나가 비추는 허름한 탁자에서 맥주 한 잔하며 밤공기에 취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내 자신이 스스로 자만했다.

수평선이 너무나 깨끗해서 , 뿌연 안개속의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느리게 나아가고 잇는 저 배들.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든다.

 문득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나에게는 그때의 나로써 나는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여겼던, 그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립고, 취업준비와 학점관리로 바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던 그때가 가장 보고프다. 대학생의 나는 늘 방황해왔지만 항상 남몰래 꿈을 꾸어왔고, 욕심이 컸다.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중국인은, 내가 아는 대부분이 순진하고 大方(호탕)하고 선량하고 친절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좁은 시야로 본다면, 적어도 한국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대부분이 배타적이지 않고, 사람의 놓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족들 품에서 자란 한국의, 서울의 풍경, 합정 골목 카페의 커피향과 학교 캠퍼스의 벚꽃과, 그 때 내 안에 뜨겁게 피어올랐던 꿈과 희망찬 야망, 내 자신에 대한 무한한 믿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 모든 것이 부재하는 곳에 혼자 생활하고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게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힘겹다.

따뜻한 햇빛이 비추는 칭다오의 대학로(大学路)에서.

이렇게 , 평소보다 높은 위도의 이 곳에서 검은 주황색 밤 속에서 단조롭고 선명하게 존재하는 빨간 불빛의 은행과 24시간 식당들이 보인다. 내가 퇴근하고 지하철에서 내린 후 늘 홀로 걸어오는, 백화점 앞의 사거리, 그 앞에 주택들마저도 모두 불빛이 꺼져 깜깜한 밤이다.  

 하지만, 칭다오에서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의류 회사에 들어가  외지인으로서 홀로 서기를 해온 지금까지도, 내가 분명 행복했던 그 찰나의 순간들은 있었다. 나의 노력으로 미화해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때때로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느끼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담감을 극복해내고 싶기도 하지만, 분명히, 분명히 있다.

5월의 시원한 밤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면, 내가 아직 낯설고 무섭게 느끼는 이 나라를 천천히 느낄 수 있다.            이 찰나의 순간들에 너무 감사한다.

 내 안에,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부동의 온기를 담고 살자고 다짐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더욱 세삼스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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