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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Nov 03. 2017

외딴 방에서

  5월의 칭다오, 겨우내 추위를 못이겨 굳게 닫아놓았던 창문은 이미 활짝 열리고, 익숙치 않은 새 공기를 싱그럽게 받아들이는 계절이다. 혼자 살던 오피스텔 19층, 많은 거주민들이 사무실 또는 거주 지로써 살고 있는 아파트였지만, 나에겐 홀로 철저하게 동떨어진 외딴 방 같았다.


  1910호 내 방 옆에는 흡연 거주민들을 위한 작은 테라스 발코니가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칠때마다 어느 순간부터 양파 익은 냄새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시간이 지나 점점 고약해졌고 나는 그곳을 지날때마다 코를 막았다. 정말 누가 양파를 이곳에 둔 것일까, 아니 양파를 두었더라도 이정도로 진동하는 냄새를 만들어내려면 꽤 많은 양파여야 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그런 짓을(나에게는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일이 남에게는 곧 생산수단이자 가치 있는 마음의 양식일 수가 있지만) 한 것일까.


 발코니에 가보니 정말 대략 100개정도로 보이는 양파껍질이 얇게 혹은 두껍게 잘린 채로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소리없이 바람에 말려지고 있었다. 양파는 이미 음식 속으로 사라지거나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을텐데, 그 양파 내음은 마치 이미 죽은 이가 남기고 간 피부가 서서히 썩어가는 듯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오피스텔 정문을 나와 공사중인 공터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서있는 높은 빌딩들 사이로 난 갓길은 사거리로 이어졌고, 사거리를 건널때면 신호등이 따로 없어 늘 위태로운 길이었다.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린 후 고층 빌딩들속에서 한없이 작은 나는 탁한 바람에 숨결을 가르며 빌딩들과 공터 사이를 걸어갔다. 들숨에 외로운 공기를 마시고 날숨으로 탁한 바람을 뱉어냈다. 


19층 발코니에서 양파 껍질은 고요하게 더더욱 말라가고, 마른 바람은 아무런 사사로운 감정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무렵 보드랍지만 건조한 5월의 바람에 양파가 말라가고 있을 때 19층 외딴 방에서 매일 밤 나는 점점 인간적인 생동감보다는 5월의 고요한 어둠에 자연스레 메말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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