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의 미도리 Jan 12. 2018

후쿠오카에서

여행 중 핸드폰을 잃어버려 냅킨에 적어두었던 짧은 기록들


 <나카스카와바타에서, 첫째 날>
일본은 늘 나에게 걷혀지지 않은 검은 유리에 가려진 듯한 나라였다. 낯설진 않지만 친숙하지도 않았고, 솔직함이 결여된 듯한 인상 때문에, 나는 먼저 선뜻 여행을 가고자 하지 않았다. 근거 없는 적대감이었을까. 공항에 오자마자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는 울상이 되어, 공항에서부터 일본을 낯설어하고 증오했다. 하지만 몸에 베어 있는 친절함과 중도, 그리고 타인에 대한 겉치레식 배려는 그 나름대로도 여행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되, 마음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는 않는, 걷어지지 않는 유리막이 있었으나, 유리막은 그 자체로 중간을 지키는 미(美)가 있는 듯했다. 거리는 예뻤고 무드와 건축미가 조화로웠으며, 매우 정적인 도시다.




<셋째 날>

낯선 도시의 무채색, 향을 잃어버린 듯한 도시의 고유성, 수많은 조명과 온갖 불빛의 부조화,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 이를 낯선 도시가 여행객에게 주는 신선함이라 하고싶다. 함바그 냄새를 뚫고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과 골목들 사이로 보이는 유흥주점의 여자들, 그리고 회식을 끝내고 나오는,불편한 미소 속의 회사원들을 스쳐지나가며, 이방인인 나는 여행지의 빛과 어둠을 보며 삶에 대한 위로를 얻는 것일까. 차갑게 냉각된 도시의 공기를 뜨거운 조명들이 억지로 녹이고 있고 나는 그 골목들 사이를 지나가며, 후쿠오카의 한 골목에서 낯설지 않은 도시인들을 느낀다.

후쿠오카 캐널시티


작가의 이전글 외딴 방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