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마주한 나를 짚어보며

첫 상담

by 사월의 미도리

상담 10분 전이다. 어디서부터 언제 일어난 일부터 서술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채 붕대를 풀지 못한 손목. 내가 일주일 전 손목을 그을 만큼 고통스러웠다는 증명을 할 만한 사건들을 듣기 좋게 나열해야 할지, 말이 나오는 대로 말풍선이 빈칸으로 나오면 나오는 대로 중얼거려야 할지. 앞서 집 근처 상담센터에서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두 차례의 상담 이후 상담에 대한 불신이 조금 생겨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한 욕구는 가슴 깊숙이 품어 왔다. 죽고 싶은 욕구라기보단 살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같은 동네와 같은 학교 출신이었던 친구들이 모두 다른 이웃 학교로 입학하고 나는 운이 나쁜 소수에 속해 집에서 조금 더 떨어진 다른 중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입학한 중학교는 낯설었다. 나무에 맺힌 열매가 기대를 안고 꽃을 피웠으나 생각지도 못한 그 무게감과 칠흑 같은 자유로움에 문득 두려워지는 것처럼. 나는 반에서 가장 앞 그리고 오른쪽 끝에, 문이 열리는 그 자리에 앉았다. 입학식 후 개학 첫날부터 아이들은 이미 서로 알고 지낸 사이끼리 짝지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고 나는 혹시나 아는 친구가 있는지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같은 반에 아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3교시부터 이미 나는 철저히 혼자일 거라는 확신과 불안에 휩싸였다. 친구들과의 소통은 모두 학교에서 직접 혹은 집전화로 하던 그 당시,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어머니는 나에게 휴대폰을 사주셨다. 우연히 나에게 친절하게 이름을 물어보며 말을 걸었던 안경 쓴 한 친구에게 나는 내 휴대폰 번호를 줬고, 며칠 뒤에 ‘발신자 표시제한’이란 이름으로 욕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 그 당시 또래 친구들, 초등학교 친구들 포함해서 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교실에서 번호를 줬던 그 친구뿐이었고 나는 그 친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숱이 많은 긴 생머리는 햇볕에 비치면 옅은 갈색으로 보였고 하얀 웃음 뒤에 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티끌 하나 없이 명랑하게 웃는 그 친구의 웃음 뒤에 자그마한 칼을 쥔 검은 증오가 피어오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의혹이 커져갔다. 어느 날 그 친구는 갑자기 휴대폰 좀 구경하겠다며 내 휴대폰을 가져갔고, 내가 다시 휴대폰을 돌려받았을 때 내가 보관하고 있는 욕이 담긴 문자들은 삭제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혹시 문자들을 삭제했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자기가 삭제 안 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의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나는 이 사실을 언니에게 말했다. 다음 날 어수선한 점심시간 뒤 쉬는 시간, 세 살 터울인 언니는 내게 전화를 하여 그 친구를 바꿔보라 하였고,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기껏해야 고등학교 1학년 생이던 언니가 그 친구에게 강한 어투로 몰아붙였을 것이고 하얀 이빨을 가진 그 친구는 지지 않고 당당하게 언니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통화 후 그 친구는 새 학기에 빨리 집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불안감 속에 신속히 결성된 친구 무리들을 이끌고 내 책상을 에워쌌다. 나에 대해 언니와 그 문자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왜 자기를 의심하는지 억울하다며 나에게 화를 냈다.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없었다. 그 친구가 그 문자를 보냈다는 증거도 내겐 없었다. 그날로부터 따돌림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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