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하늘이었던 날들
중학교 시절 내가 기억하는 하늘은 늘 노란 잿빛이었다. 축구장의 모래가 아이들의 발길질에 공중에 휘날리는 것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창밖을 보면 노랗고 삭막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1학년 반이 모여있는 건물의 입구 구석에는 늘 모래 포대가 서너 개씩 쌓여있었는데, 등굣길에 늘 고개를 심장을 향해 박고 걷다가 그 포대들이 눈에 들어오면 지그시 노려보곤 했다. 나를 괴롭히는 것에 흥미가 생긴 아이들이 그 포대 위에 앉아 가끔 놀곤 했다.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할 눈동자들 대신 그 포대들 위에 남은 앉은 자국들을 보면 다리에 줄곧 힘이 풀리곤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반 아이들의 대화부터 귓속말까지 모든 말소리가 내게 소음이 되었다. 그 수많은 소리들 속에 내 이름이 들리곤 했다. 교실 오른쪽 뒤 구석에서 무리의 아이들이 열심히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내게 와서 흰 종이에 한 친구의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무슨 의도로 내게 글씨를 써보라고 한 줄 몰라 덤덤한 척 펜을 들어 그 친구의 이름을 적었다. 이번엔 다른 친구의 이름을 적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아이들은 갸우뚱거리며 그 종이를 가지고 다시 그 오른쪽 뒤 구석에서 열심히 떠들어댔다. "의심받을까 봐 일부러 휘갈겨 썼네!" "야, 이거 여우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이 들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고 아이들은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문을 넘자마자 한 아이가 "그 애가 왔어요."라고 했고 아이들은 모두 다 속닥거림을 멈추고 화장실을 떠났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눈 밑이 시큰해지기 시작해 나도 모르게 화장실 두 번째 칸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눈앞에 화장실 문에 적힌 글과 그림들이 보였다. "면상 갈아 마셔버린다" "입술 병신" 등 어떠한 실마리 없이 그것들을 마주한다 해도 그 표현들이 가리키는 것은 나였다. 그 글들 옆에 나를 괴롭히는 데에 주로 참여하는 두 친구들에 대한 욕이 적혀 있었고, 누군가가 그 아이들의 욕을 적어놓은 듯했다. 아이들은 그 욕을 적은 게 나라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 이런 서사를 계획한 거라면 나의 욕을 적은 것은, 어찌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이 합리적인 보복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교실로 돌아간 나는 이미 욕을 먹어도 싼 병신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등교를 가장 첫 번째로 한 날이었다.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책상 속에 넣으려 하자 뭔가가 막혀 책상 안을 보았다. 구겨진 종이였다. 얇은 잡지 한 페이지를 찢어낸 종이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였는데 구순구개열로 태어난 아프리카의 한 아기의 사진이었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며 이윽고 다시 눈 밑이 시큰거렸다. 누군가 볼까 무서워 그 종이를 쓰레기통 안쪽으로 넣었다.
증오는 사랑보다 길다. 사랑보다 더 투명하고 단단하며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증오일 것이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내 마음의 명도, 항상 바른 아이였던 나의 예기치 못한 부적응에 대처하던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의 언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내성적이었던 나에게 어머니는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하셨고, 쓴소리를 하면 그대로 맞받아치면 된다고 하셨다. 색이 없다 못해 무채색으로 남아 있던 내게 담임선생님은 나의 색을 찾아야 하고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하셨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노을이 가까워지는 시간에도 태양이 직선으로 뻗는 것을 바로 보지 못하였던 것 같다. 태양은 늘 나를 비껴갔고 그렇게 나는 늘 그림자를 안고 걸어 다녔다. 그런 나 자신이 깨어있는 시간이 죄송했고 나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