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위에서 연결된 직선들

by 사월의 미도리

3년 전 여름. 길고 검은 얼굴을 한 밤이 지나고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햇살이 방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오고 있었다. 왼쪽 팔이 쓰라려 쳐다보니 내가 대충 휴지로 마구 감아놓은 흔적이 보였다. 휴지를 풀자 피부 안의 하얀 표피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본능적으로 봉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을 나섰다. 여권을 들고 1층에서 접수를 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8차선 사거리의 동쪽에 위치한 대학병원에서 800미터 남짓하여 꽤 가까웠다. 봉합을 해아 하는데 너무 늦게 왔다고 하는 의사의 얼굴에 노곤함이 가득했다. 다행히 의사는 상처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고 상처를 수습하고 처치하는 데에 집중했다. 고통을 느끼는 멍한 눈을 한 채로 5분 정도 지났을까, 2센티미터가량 벌어져 있던 두 갈래의 살갗이 다시 맞물려 있었다.

응급실 입구를 나서자 익숙한 노란 하늘이 보였다. 예전에 중학교 입구에 쌓여있던 모래 포대들과 아이들이 공을 찰 때 날아다니던 모래알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8차선 사거리는 어둠이 내리는 밤이 아닌 시간이면 언제나 바쁜 차들과 경적 소리로 가득했다. 그 경적 소리들이 내가 밤동안 또다시 깨트린 유리 조각을 부수고 아픔을 증폭시켰다. 용서가 되지 않는 말들, 단 한 번도 사과를 받은 적이 없지만 억지로 용서를 하며 사랑을 하려 했던 날들은 항상 내 몸의 상처로 각인되었고, 피가 터지는 순간 비로소 보이지 않던 상처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이 진정되었다. 왼쪽 팔의 삼분의 일은 많은 직선들이 서로 겹쳐져 있다.

사람에 대한 오랜 관찰과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절망, 나를 굴복시켰던 수많은 모양의 마음들. 날카로운 말과 표정, 앙칼지거나 혹은 비겁한 강자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내 안의 진동. 오랫동안 나 자신을 되는대로 맘껏 방치한 것에 대한 대가. 2주 전 수면제를 10알 넘게 먹고 입모양이 어눌해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며 칼을 들어 힘껏 그었던 손목. 바닥에 흥건한 붉은 선홍빛을 보고 나서야 스스로 구급차를 부른 방 안의 나. 여러 차례 맛본 크고 작은 절망의 기억들을 나는 모른 채 하며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를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어찌 보면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나도 당연히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인간적 자연재해들을 나는 온몸의 촉수로 흡수했고 그때마다 내 혈관의 습도는 달라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장소와 시간에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들이 있다. 나를 하대했던 인간의 손길과 표정, 폭력이라 부를 만한 그 사람의 목소리. 나를 향한 행동과 눈빛, 그리고 단어들보다도 그 사람이 나를 마음대로 정의하고 내 인생 안에서마저 나를 그의 뜻에 따라 배치시키는 그의 마음이, 그 자체가 폭력이었다. 몇 달 전 중국에서 출장을 온 상사 한 분이 사무실 문을 열고 제멋대로인 걸음걸이로 들어와 나를 보며 '너 왜 웃냐'라고 하며 내 목덜미를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모욕적이었고 마치 눈물 같은 신물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가 내 목을 잡고 흔든 그날의 그 시각이 계속 내 마음속에서 되새김질이 되었다. 잊히지 않는 나의 수많은 혈흔들은 아직 나무의 나이테가 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듯하다. 그런 기억들이 올라올 때면, 이렇게 두 손에 이마를 놓고 숨을 푹 내쉰다. 아직 내 식도로 소화시키기엔 무리인 말소리와 몇몇 사람들. 사랑해보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한 나에겐 힘겹다.

모두가 나무와 같이 그저 그 자리에서 서로만을 바로 보며 존중하고 관계의 간격을 지키면 좋을 것을. 내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건지 나의 불안은 다시 나의 피부를 뚫고 나와 촉수를 세우고 타인의 무게를 잰다. 말의 무게, 행동의 무게, 돈의 무게, 표정과 걸음의 무게까지 모두 계산한다. 생각에 지쳐, 아니 의심에 지쳐 미움이 싹트고 초조해진다. 그림을 하나 그리려고 하는 것뿐인데, 마우스가 컴퓨터의 블루투스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조차도 이렇게 힘이 든다. 마우스를 연결시키는 것도 힘든데, 세상엔 자극이 너무 많다. 말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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