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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Dec 14. 2020

거식증의 발달

 더위를 한시름 덜어놓은 길 위에 신호등의 초록빛이 반사되어 그녀의 앞에 놓인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의 앞에 적막하고 편안한 도로의 냄새와 땀을 내뿜는 듯한 습한 나뭇잎의 향기가 흐르고, 가로등이 붉게 물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보인다. 붉은 벽돌이 담을 이루는 건물의 맨 위층에 홀로 불이 켜져 있다. 완전한 어둠 속에 켜진 불빛이 밤으 달빛처럼 아늑하고 아름답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신호등이 바뀌고 가로수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차들이 빠르게 지나다니며 나뭇잎에 진동을 전한다. 빠른 속도에 탁한 공기가 섞여다니자 내 미간에도 자연스레 주름이 잡혀 있다. 언제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 곧 바뀔 파란 신호등에 쫓겨 횡단보도를 바삐 건넌다. 빨간불이 바뀔때쯤 난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다. 늘 이렇게 살아왔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친절을 베풀고 타인의 기준에 반하는 그 모든 사물들을 나에게서 억지로 제외시켰다. 그리고 어느새 음식까지도 통제하는 나 자신을발견했다. 

 천천히 살아간다는 건 나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음식에 대한 집착 없이 일 분이라도 나의 속도를 가지며 사는건 가능한 것일까. 말소리, 그리고 단어들, 배려가 부재한 목소리와 무표정들, 문장을 내뱉는 여러 얼굴들. 나는 언제부턴가 불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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