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의 미도리 Dec 14. 2020

비 오는 날

 한 입 베어 물은 사과를 든 그녀의 손이 그대로 땅에 떨구어진다. 그녀 주변의 모든 풍경이 소리 없는 사물이 되고, 그녀는 힘없이 쓰러진다. 뼈가 앙상한 광대뼈가 그대로 전봇대에 부딪혀 상흔이 남은 듯 보인다. 


비가 오니 온 세상이 하얗다. 두 눈에 안개가 낀 채로 살아가다 보니, 세상이 뿌연 건지 아님 내 눈에 눈물이 차올라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건지, 이제 알 수 없게 되었다. 빗물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구슬이 굴러가듯 메끄럽기도 하고, 참새들이 비맞은 전깃줄에 잠시 앉아 피곤함을 털어버리듯 쓸쓸하기도 하다. 

 배가 고픈데, 먹을 수가 없다. 아침에는 무조건 사과 반쪽을 먹는다. 그 밖의 음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몸무게가 44.2키로였다. 어제보다 0.3키로가 빠져 홀가분하다. 몸 안에 노폐물이 쌓이는 듯한 기분은 견딜 수가 없다. 어제 운동도 적게 했는데 빠진걸 보면 역시나 음식의 양을 줄여야 하나 보다. 난 언제까지 굶주려야 하는걸까. 이 지옥이 끝은 나는 걸까. 나는 나 자신을 언제까지 통제해야 하는걸까.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