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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Dec 16. 2020

방 안에서

  

일러스트 by Midori of April

 햇빛의 단면조차도 들지 않는 차갑고 축축한 방. 그녀는 저 낮은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붕 앞의 벽의 단면에 눈부신 햇볕이 드는 걸 봐버렸다. 하지만 관조롭게 햇빛을 듬뿍 받고 있는 다른 공간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의 맘 속엔 여러 말들이 숨어있다.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는 말들이 꽁꽁 언 채로 나오지 않으려 한다. 건물 벽에 반사된 햇빛의 조각들이 그녀의 방 유리창에 부딪힌다. 태양은 관심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있는데, 눈이 부시다. 

 그녀가 사는 방 아래에는 호수가 있다. 바람이 호수를 방해해 결을 일으킨다.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하면, 물결이 거세지고 물 위에 비친 빛의 무리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잔물결은 점점 더 커지고, 그 위의 물가의 나무들도, 낮동안 햇빛 아래서 그 무엇에도 영향받지 아니할 것 같았으면서, 가지들조차 서로에게 기대고 마구 흔들며, 흐트러진다. 건너편의 아스팔트 도로 위 시멘트 건물들은 꿈쩍 않는다. 미동도 없다. 살아있지 아니한 것은 절대로 자연스러움에 영향을 받을 수도, 동화될 수도 없다. 펜을 잡은 그녀의 손 위에 닿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관망자로 써가 아닌, 감상자로 써가 아닌, 그녀 또한 지금 살아있고 또한 영향을 받으며, 방해받는다. 

 며칠 전 선물로 받은 식물이 죽어가기 시작한다. 살구가 도로의 차들에 밟힌 것 같은 잔인한고 싱그러운 냄새가 풍긴다. 그녀의 숨결이 식물의 호흡과 맞물려 방 안을 가로지른다. 


 내 몸속 어딘가가 눈물이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만 같다. 땀구멍에서 미처 땀이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삼층에서 저 멀리 빌딩들 사이에 빨간빛을 내는 교회 십자가가 무려 다섯 개나 된다. 그 뒤로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친구 생일 파티로 한 번 가봤던 고급 아파트 단지, 집 바로 앞 이층짜리 주택의 옥탑방 주인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이름 모르는 이가 건너편에서 형광등을 켜고 인기척을 내면, 그 인간적인 움직임에 위로받곤 했다. 새벽, 동이 트기 전, 보랏빛 한밤중, 낮은 옥탑방을 나는 편하게 내다볼 수 있었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부엌 구석인 듯한 창가의 형광등은 늘 켜져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말하는, 어두운 골목의 환한 가로등 같은 그런 화사한 빛은 아니었다. 그때의 분침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누구의 움직임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둠에 숨어 불빛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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