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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Dec 18. 2020

아홉 살의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어느 병원에서

 

일러스트 by 사월의 미도리 Midori of April

아홉 살의 해, 어느 날, 여름과 가을 사이, 개인 병원의 작은 병실 안에서 마취가 깨어 이윽고 엄마를 향하는 나의 눈길. 그때까지 엄마가 그토록 피곤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장이 뒤틀리고 입가가 고통의 마비에 걸린 듯 처절하게 아플 때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죽을 건네는 아빠의 손을 밀어내고 그녀의 노곤함도 잊은 채 온신경을 나에게로 집중한다. 그때 엄마만을 생각하며 막 수술을 끝낸 입속이 너무나도 아파 가슴속으로만 저미던 죄책감. 차가운 작은 침대 위에 나의 작은 몸뚱이를 지켜주던 우리 엄마. 아홉 살의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숨 막힐 듯 붐비던 병원 안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크고 작은 질병을 가슴에 달고 있었고 마취가 막 효력을 끝내고 의식이 돌아와 진통 속에서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저미는 가슴을 안고 부족한 병실을 다른 이에게 제공하기 위해 피 받이 통을 허리에 단 채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를 그녀라 함은 나로 하여금 낯설면서도 슬픈 신선함. 한 번도 엄마는 내 나이 스물일곱에 지키고 누리고 싶어 하는 욕심을 부려보지 않았다는 것. 나도 한 여자로서의 엄마의 모습을 그려 나가지 않았다는 것. 아니 어쩌면 내가 엄마를 여자의 색을 띠는 물감을 칠 하지 않는 동안에 엄마는 스스로 색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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