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어느 병원에서
아홉 살의 해, 어느 날, 여름과 가을 사이, 개인 병원의 작은 병실 안에서 마취가 깨어 이윽고 엄마를 향하는 나의 눈길. 그때까지 엄마가 그토록 피곤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장이 뒤틀리고 입가가 고통의 마비에 걸린 듯 처절하게 아플 때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죽을 건네는 아빠의 손을 밀어내고 그녀의 노곤함도 잊은 채 온신경을 나에게로 집중한다. 그때 엄마만을 생각하며 막 수술을 끝낸 입속이 너무나도 아파 가슴속으로만 저미던 죄책감. 차가운 작은 침대 위에 나의 작은 몸뚱이를 지켜주던 우리 엄마. 아홉 살의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숨 막힐 듯 붐비던 병원 안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크고 작은 질병을 가슴에 달고 있었고 마취가 막 효력을 끝내고 의식이 돌아와 진통 속에서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저미는 가슴을 안고 부족한 병실을 다른 이에게 제공하기 위해 피 받이 통을 허리에 단 채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를 그녀라 함은 나로 하여금 낯설면서도 슬픈 신선함. 한 번도 엄마는 내 나이 스물일곱에 지키고 누리고 싶어 하는 욕심을 부려보지 않았다는 것. 나도 한 여자로서의 엄마의 모습을 그려 나가지 않았다는 것. 아니 어쩌면 내가 엄마를 여자의 색을 띠는 물감을 칠 하지 않는 동안에 엄마는 스스로 색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