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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Dec 18. 2020

나의 뼈와 살에게

그 꿈 많던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자화상’ 일러스트 by 사월의 미도리 Midori of April

외딴섬 한가운데에 나는 고독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어느새 나 자신은 홀로 배를 타고 나갈 힘조차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고립했고, 밀물과 썰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그저 대자연이 주는 학대로 받아들였다.

 그 꿈 많던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몸무게와 색깔이 아닌, 내가 쓴 글들과 내가 꾸던 공상들이 이루었던 나의 집약체. 글로써 완성되던 자아, 그리고 그 시절의 생각들이 이룬 나의 뼈와 살. 나는 나를 언제부터 죽여갔을까. 대체 왜 나는 외딴섬에 한 소녀를 가두고 학대를 했을까. 바닷물이 그녀의 상처에 닿아 쓰라릴 때도 나는 모른척했다. 들이쉬고 내쉬는 당연한 호흡조차 허용하지 않고, 숨통을 조이고 굶겼다.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고 싶다. 고문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너무나 쉽게 사과를 하듯, 너무나 쉽게 쓰이는 이 한 마디가 너무 부끄럽다. 나는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을 안아주려 한다. 미안하다. 다 괜찮다. 이대로도 다 좋다. 오늘 저 멀리 떠있는 밝은 달 아래에서 나의 살을 어루만져주자. 나의 뼈와 살에게 감사하며, 추위로부터 감싸주는 피부를 어여삐 여기고, 두 팔로 두 다리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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