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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Dec 20. 2020

상상 속 어딘가에서

방 안에서 바라본 하늘

 주홍 구름이 맺혀 있는 노을이 나에게 이리로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맥주잔에 차가운 이슬이 맺히고, 거품은 사라지며, 기포가 올라가는 게 보인다. 맥주잔을 들어마시려는데, 유리잔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붉은색과 검은색의 그 어딘가에서, 눈물을 내비치는 듯했다. 방 너머로 보이는 초원은 푸른빛은 사라지고 햇빛이 집어삼킨 듯 온통 붉은색을 뗬다. 노을이 이슬을 머금은 것인지, 내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불면증> 일러스트 by 사월의 미도리 @midoriofapril

 끝없이 펼쳐져 있는 작은 집들이 수평선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그 위로 솟아난 높은 건물들은 오히려 그들 속에 부자연스럽게 끼어 있었다. 연파랑 색의 이불을 창문 난간에 널어놓으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살아가는 것 같은 신선함과 공포, 그리고 기쁨에 잦아들었다. 물론 아침에 다 마른 이불을 걷어내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낮은 지붕들을 보고 마음이 놓였지만. 저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높은 곳에 있는 건지, 여분의 더 낮은 세상 속에 와버린 건지, 그래서 이 고도에서는 노을을 누릴 수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태양을 만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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