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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Jan 30. 2021

영하의 날씨 속에서

살이 올라 어여쁜 두 다리를 바라보며

 나는 50킬로였을 때도, 48킬로가 되었을 때도, 42킬로가 되었을 때도 행복하지 않았다. 먹는 것에 대한 공포감과 먹을 수 없다는 차가운 고독감 속에서 바닥을 기며 헤맸고, 난 영원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거리에 즐비한 가로수들에 맺힌 첨예한 고드름들이 차례대로 녹아 내 각막 위에 떨어졌고, 어깨에서부터 한기가 올라와 나의 시야를 동결시켜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다리는 살과 근육이 없어 항상 시렸고, 마음 또한 얼음이 되어 영상 10도의 날씨에서도 한기를 느꼈다. 난 남은 여생 동안 음식 앞에 다가서면 끊임없이 구역질을 느끼고 증오심을 품을 것만 같았다. 먹는 것과 살이 찌는 것에 대해 증오했다. 아침에 일어나 잠에 잠긴 내 목소리와 영하의 날씨에서도 튼튼히 버텨주는 두 다리를 증오 했고, 나의 뜨거운 눈물까지도 미워했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해할 생각으로 가득 찼고, 칼날이 나의 손목을 노릴 때 비로소 안정감을 찾았다.

 다른 이들이 생명의 열매를 먹고 위로 성장해 나갈 때에 나는 염려의 열매를 머금고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영하 10도의 날씨에서도 굳건히 버텨주는 두 다리로 걷고 있다. 이 넓은 광야와도 같은 세상에서 살이 오른 얼굴과 튼튼한 두 다리와 두 팔이 바람을 가르며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살이 차오르는 느낌이 좋다. 파란 핏기가 가시며 살이 오르는 내 두 팔이 어여쁘고, 작아진 바지를 조용히 내다 버리는 내 얼굴에 작은 미소를 품는다. 나 자신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차가운 가슴에 온기를 품고선 타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건강한 기운을 품은 나의 뜨거운 가슴은 이제 체중과 겉모습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 조금 더 애정을 품고 있다. 영상의 날씨든 영하의 날씨든 그 어느 추위도 두렵지 않다. 나는 어느 땅에서도 굳건히 서서 딱딱한 대지를 두 다리로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따뜻한 대화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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