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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미도리 Jan 12. 2021

그 겨울의 지난 날들

해빙되지 않은 마음을 추스르며

 

'시간과 계절' 일러스트 by 사월의 미도리

마음속이 답답하다. 배출을 하지 못해 남은 찌꺼기가 채에 걸러진 채 그대로 개수대에 놓인 것처럼, 물로 씻기지 못한 앙금들이 마음속에서 썩어간다. 사람을 갈망하면서도 사람을 무서워한다. 푸른 비단이 붉은 밧줄에 묶여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억지웃음에 묶인 마음의 찌꺼기에서는 악취가 난다. 무표정에서 오히려 향기가 나는 듯하다. 솔직하고 투명하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축복인 것일까.

 새벽빛이 감도는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코 앞까지 차올라 있는 아침의 어스름이 붉게 물든 채로 나를 쳐다본다. 지붕들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빨간 벽돌 사이사이에 시멘트 가루들과 섞인 눈들이 그대로 얼어버린 채 겨울을 나고 있다. 나의 슬픔을 하나 둘 묻어가던 그 겨울의 처마 밑에서, 나는 나 자신을 토닥이기도 하고 학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추억에서는 향기가 나기도 하고 악취가 나기도 한다.

 얼어버린 차가운 바닥 위를 가르는 나의 두 발과 두 다리는 휘청휘청 고독의 공기에 나부끼며 걸어갔다. 어쩌자고 그 먼 길을 돌아왔을까. 나는 스스로 고독의 씨앗을 품고선 해빙되지 않은 딱딱한 눈길을 맨발로 걸었다. 그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온 지금, 나는 그 겨울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어김없이 뜨거운 눈물을 훔친다. 밖에 새하얗게 눈이 또 쌓인다. 마음속에 채 피지 못한 씨앗이 그대로 이 겨울 안에서 눈 속에 파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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